[200호 문화비평: 신자유주의와 재난] 안전의 민영화, 위험의 계급화

200-09-1

  비통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발생 2주째가 지나고 있는 현재, 아직도 90여명에 달하는 실종자가 차가운 바다 속에 갇혀 있다. 아직까지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애통함과 분노가 실종자 가족은 물론 온 시민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사고는 규모도 규모지만, 구조 작업에 대한 상식적인 기대가 완전히 배반당했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원통하게 한다.

우리는 재난이 닥치면 냉혹한 자본주의의 현실이 잠시 중단되고,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위기가 조속히 극복되리라 기대한다. 이번 사태에서 이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국가의 구조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더디고 무뎠고, 계약이니 비용이니 하는 자본의 언어가 심상찮게 들려왔다. 단적으로 ‘계약’을 통해 민간구난업체로 선정된 업체가 ‘실적’을 위해 민간 잠수사들과 해군의 구조 활동을 지체시켰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평상시의 선박운행과 안전관리는 물론 사고발생부터 구조 활동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고리들에서 부패와 유착관계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절체절명의 재난상황에서 생명보다 이윤의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아니, 양심을 지닌 인간으로서 그런 행태가 가능하기는 한가?

사회를 유지시키는 이러한 상식적인 기초와 가치들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욱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비용절감과 수익극대화의 원리가 자본의 편에서는 ‘상식’이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육, 의료, 교통, 치안 등 국민의 사회적 안전과 관련된 기본적인 활동들을 민간에 ‘아웃소싱’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위험은 효율적으로 처리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된다. 계약을 맺어 위험을 관리하는 민간업체는 재난 상황을 이윤창출의 기회로 볼 뿐이며, 민간에 책임과 자원을 이양한 국가는 위험을 다스릴 예산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논리적 추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선례들을 가지고 있다. 그 전형적인 사례를 신자유주의화가 극도로 진행된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카트리나,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2005년 8월, 미국과 멕시코 만 연안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전대미문의 사망자 수와 피해 금액을 기록했다. 남부지역의 루이지애나·미시시피·앨라배마·플로리다가 궤멸적인 피해를 당했으며, 특히 제방이 무너진 뉴올리언스 시는 도시의 80퍼센트가 수몰되었다. 미국 정부는 1천 명 이상의 사망자 수를 발표했고,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 미국에서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토록 많은 희생자를 낸 주요원인은 연방재난관리청 FEMA의 늑장대응이었다. 많은 주민들이 폐허가 된 시내와 고속도로 등지에 내버려지고 수몰지역에 고립되었으나, 구조의 손길은 더디기만 했다. 허리케인이 상륙한지 5일이 지나서야 재해 지역에서 탈출하는 데 필요한 버스 1,000여대가 파견되었다. 전기와 식수가 끊겨 많은 노약자와 환자들이 이미 유명을 달리한 상태였다.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닥쳤을 때도 이틀 만에 구조지원을 했던 미국 정부가 어째서 자국의 도시에는 4~5일이나 되어야 도착했는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난한 흑인들의 거주지역이라 애초 부시 정부의 관심 밖이었다는 말이 돌았고,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고 절망적으로 성토했다.

FEMA의 구호 대책이 그토록 무기력했던 구조적 요인으로 많은 이들이 민영화를 지목했다. 1979년에 설립된 FEMA의 애초 역할은 국가의 ‘모든 위험’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비하는 것이었고, ‘재해 완화에 1달러를 쓰면 재해 복구비용 2달러를 절약하게 된다.’는 모토로 활발한 재해예방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2001년 부시 정권의 탄생과 함께 FEMA의 권한 및 예산축소를 동반한 민영화가 진행되었다. FEMA에도 ‘경쟁’의 원리가 도입되었고, 주요 임무는 재해의 피해 축소와 인명 구조가 아니라 재해 대책 업무를 경쟁업체보다 싸게 수행하는 데에 맞춰졌다. 카트리나가 닥치기 일 년 전인 2004년 루이지애나 주는 FEMA에 허리케인에 대처할 대비계획을 세울 자금을 요구했으나 정부에 의해 기각되었다. 제방의 보수와 건설을 위한 예산이 거듭 깎이면서 방파제는 미완성인 채로 내버려지게 되었고, 결국 기상학자들의 예상대로 허리케인이 상륙했을 때 마을의 80퍼센트가 가라앉고 만 것이다. 예산도 전문가도 없이 형식적 권한만 남은 FEMA는 재난 대처에 있어 관료적 무능함만을 표출했다.

도시의 제반 시설이 철저하게 파괴된 재난 상황은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사업기회로 여겨졌다.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용병업체인 블랙워터가 고용되었고, 재해민들에게 이동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민간 건설업체들이 고용되었다. 이후 이러한 계약들에 대한 의회의 조사 결과 ‘과잉 청구, 과다 지출, 잘못된 운영’들이 지적되었다. 거리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은 한 장례 서비스 업체는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렸으나, 구호직원들과 자원봉사 장의사들은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이러한 활동이 그 업체의 상업적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구호작업의 민영화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입은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약을 맺은 사기업에 들어간 수백억 달러와 세금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2005년 11월 의회는 연방 예산에서 400억 달러를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삭감한 프로그램들 중에는 학생 대출, 의료 서비스 보조, 빈민 무료식사권 등 복지서비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재난

  카트리나 사태는 여러모로 세월호의 참상과 중첩된다. 국가가 사회 안전을 위한 핵심적인 기능을 민간에 이양한 결과, 국가는 계약업자의 도움 없이는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번 사태에서 구조 책임을 총괄해야 할 해경이 ‘민간의 구조 능력이나 장비가 해경보다 더 낫다’고 시인한 사실은 여러모로 징후적이다. 민영화를 통해 국가는 기능뿐만 아니라 책임마저도 민간업체에 이양한다. 그러나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민간업체는 사회적 책임 대신 계약사항에 관한 책임만을 질뿐이다. 게다가 재난 상황에서 독점적 계약을 맺은 업체는 정부와 NGO의 지원을 고유한 상업적 기회에 대한 침해로 여긴다. 세월호 사태는 민간자본에 대한 이윤추구 기회 보장의 원칙이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인명구조에 나선다는 상식을 밀어낸 단절적 계기로 기억될 것이다.

민영화가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비판하며 권한을 대체하는 듯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관료와 공무원들이 민영화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도 밝혀졌다. 수사결과 드러난 해수부 및 해경 등 정부기관과 민간의 안전관리업체, 선박회사, 구난업체 등과의 복잡한 유착 관계에서 알 수 있듯 민영화는 고위관료들에게 은밀한 돈벌이 기회와 퇴임 후 재취업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민영화가 공공성이나 책임성을 후퇴시키는 대신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 세금을 절감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민영화를 위해 기업들에게 초기자금을 제공할 뿐더러 독점적 사업기회를 유지시켜 주기 위해 언제든 세금을 퍼줄 용의가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01~2009년 전국 29개 민간투자사업에 지급된 정부의 적자 보전금은 2조2천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민영화는 정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업과 관료의 유착을 통해 시민들의 부를 약탈하는 수단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안전을 위시해 시민의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들이 자본의 이윤증식 기회로 활용되면서, 빈민들이 우선적으로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고 가장 참혹한 결과를 감당한다. 안전도 돈을 주고 각자 구입해야 할 서비스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 시민들이 아니라 계약업체들을 상대할 뿐이다. 카트리나 사태 때 부자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호텔을 잡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차가 없거나 호텔을 잡을 돈이 없어 떠날 수도 없었다. 비정규직 선장과 승무원들이 운항하고 가난한 지역의 학생들이 저렴한 교통편으로 이용했던 세월호는 어떠한가. 또는 지난 두 달간 8명의 하청노동자가 안전사고로 숨진 현대중공업은 어떠한가. 부자든 빈자든 가리지 않는다는 ‘재난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사회적 위험은 계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할당된다. 탈출비용을 댈 수 없는 이들은 버려진 채 죽음을 맞이하는 국가. 우리는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기 이전에 침몰중인 이 국가를 먼저 재-구축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최철웅 /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 그림설명 및 출처

-그림 1: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출처: blog.donga.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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