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인문학술1: 19세기 프랑스 문학] 프랑스 소설의 거인, 발자크

19세기 프랑스는 사회·정치사 측면에서 보면 격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프랑스의 많은 정치적 변화는 비단 당대만이 아니라 후대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학 또한 마찬가지로 많은 뛰어난 작가들이 등장해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후대까지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본보에서는 19세기 프랑스 문학가 가운데 소설가와 시인 각 1명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호적부와 경쟁하겠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는 프랑스, 나아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창작력이 왕성했던 작가 중의 하나이다. 100편이 넘는 『인간극』의 장단편 소설들, 10여 편의 초기작, 100편의 『익살스런 이야기』, 그 외 수십 편의 부수적인 작품, 신문에 기고한 다수의 에세이… 거기에 많은 양의 서간집을 더하면 발자크라는 작가는 51세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글을 쓰지 않고 보낸 시간이 과연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 ‘문학의 강제 노역자’라고 칭했듯이, 30년대 이후로는 거의 매일 다량의 진한 커피를 들이키며 하루에 18시간을 집필 작업에 매달렸다. 그 밖에 시간에는 사교계를 드나들면서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한다. 낭비벽으로 인해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에도 항상 빚에 시달렸던 그는 채권자들로부터 도망 다니며 돈을 갚기 위해 원고를 계속 생산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방대한 저작이 단순히 금전적인 필요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발자크는 힘찬 상상력만큼이나 야망이 컸던 작가였다. 그의 창작의 진정한 원동력은 “호적부와 경쟁하겠다는” 유명한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펜 끝으로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야심과,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천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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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초상화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1842년 초상화

문학의 꿈

 발자크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방 도시 투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왕의 자문회의 비서, 투르 구제원의 관리소장 등 중요한 관직을 맡았던 출세한 부르주아였다. 원래 이름이 ‘발사’였는데 왕에게 특별히 허락을 받아서 ‘드 발자크’로 개명하여 귀족 성을 얻게 된다(프랑스어에서 ‘드 de’라는 전치사는 귀족들의 성 앞에 붙는 표지이다). 17세에 법학 공부를 시작하여 공증인 사무소에서 얼마간 일을 하지만 20세가 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문학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학창 시절 이미 그는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의문들에 심취하여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 강의 외에 철학, 자연사 강의를 수강했고, 철학 서적을 탐독하였다. 그러나 그의 초기작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당시 유행하던 월터 스콧의 작품들을 모방하여 짙은 고딕 색체의 역사 소설, 그리고 가장 빠른 출세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희곡을 몇 편을 가명으로 발표하지만 환상-고딕 장르, 역사 장르의 온갖 클리셰를 동원한 졸작이라는 평을 면하기 힘들다. 2000년대 초에 이 초기작들에 대해 관심이 잠시 집중되어 그 속에 훗날 위대한 문학의 전조를 발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몇 가지 단편적인 지적들을 하는 데 그친 바 있다.

 

발자크와 여인들

 20년대 후반에 발자크는 잠시 붓을 꺾고 돈을 벌기 위해 출판사 경영에 뛰어들지만 엄청난 빚을 안은 채 곧 처참하게 사업을 접어야 한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걸작 『잃어버린 환상』(1837-43)에 담겨 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29년에 『올빼미 당원』, 그리고 『결혼의 생리학』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1830년대부터 그는 소설과 신문 사설을 병행하면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친다. 그의 작품 속의 섬세한 여성 심리 묘사 덕분에 여인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고 당시 사교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인들의 살롱을 드나들게 되어 많은 여성들과 교류하고, 연애하기도 한다. 그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던 여류 작가 조르쥬 상드를 위시하여 그가 접했던 여성들은 그의 작품에서 수많은 여성 인물들을 통해 형상화된다. 그의 연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폴란드 대지주의 아내였던 한스카 부인인데, 그녀가 1832년에 그에게 독자로서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인연을 맺는다. 그 후 여러 차례 만나고, 18년 동안 4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다가 1850년, 부인의 남편이 죽고 9년이 흐른 뒤에야 결혼하기에 이른다. 발자크에게는 첫 결혼이었는데, 그가 그토록 고대하던 일이 성사된 지 3개월 만에 죽는다.

 

인간극 La Comédie humaine의 탄생

 발자크가 처음부터 자신의 작품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의도 하에 창작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1835년에 발표된 『고리오 영감』을 집필할 때, 『나귀 가죽』(1830), 『여성 연구』(1832)에 이미 나왔던 인물 외젠 드 라스티냑을 재등장시키면서 이런 수법을 총체적으로 도입하여 모든 작품을 아우를 거대한 파노라마를 구상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작품들을 『풍속 연구』, 『철학 연구』, 『분석 연구』의 3개의 부분으로 크게 나눈다. 세 부분 중 『풍속 연구』가 가장 방대하고, 『분석 연구』는 전체가 장편 소설 2권 정도의 분량 밖에 안 된다. 1843년 전집이 출간될 때 붙여진 제목 『인간극 La Comédie humaine』은 단테의 『신곡』(불어로 La Divine Comédie)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인간극』 서문」에서 발자크는 작품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악덕과 덕성의 목록을 작성하고, 정념으로 야기된 큰 현상들을 모으고, 성격들을 묘사하고, 사회의 주요 사건들을 선별하고, 일관된 여러 성격상의 특징들을 결합시켜서 전형적인 인물들을 창조해냄으로써 나는 어쩌면 역사가들이 등한시한 풍속의 역사를 써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는 동시대에 발달한 자연사 분야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것처럼 인간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행동하며 느끼고 생각하는지 관찰하되 그것의 기반이 되는 숨은 인과 관계, 원리까지 탐구하겠다는 포부를 피력하고 있다. 흔히 발자크의 작품에 긴 묘사들이 많아서 읽기가 힘들고 지루하다는 평도 있지만, 그의 묘사들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그 물질적-사회적-역사적 배경 속에서 총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기인한다. 이런 원리는 『고리오 영감』의 초반에 하숙집 여주인 보케르 부인에 대해 하는 이야기에 잘 요약되어 있다: “하숙집이 그녀를 내포하듯이, 그녀의 온 존재가 하숙집을 설명한다.”

 

타락한 사회의 초상

 이렇게, 발자크는 스탕달에게서 시작된 프랑스의 사실주의 소설을 더욱 발전시켰다.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겪는 운명을 스탕달보다 한층 더 심화되고 치밀한 형태로 당대의 역사, 사회적인 환경 속에 위치시킨다. 따라서 그의 작품의 줄거리를 이루는 사건들은 대체로 비장하거나 특별한 원인에 의해 유발되기보다는 근대 사회의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 안에 깃든 작은 드라마들이다. 예컨대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엥 소렐이 그래도 예외적인 인물이라면,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냑은 훨씬 평범하다. 전자가 끝내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파멸했다면, 후자는 사회의 장단에 맞춰서 순조롭게 적응한다. 사회에 대한 발자크의 시선은 비관적이다. 배금주의, 권력욕,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계에서 파렴치하고 교활한 자는 이기고 정직하고 선한 자는 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에 대해 어떠한 교훈이나 위로도 없이 냉소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아이러니, 시니시즘이야말로 발자크의 문체를 특징짓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뒤로 갈수록 더욱 어두워져서, 말기의 걸작들, 『사촌 베트』(1846), 『사촌 퐁스』(1847), 그리고 미완으로 남아 사후에 출판된 『농부들』(1854)은 인간적인 악의 극치가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광경을 보여준다.

계시자로서의 발자크

 그러나 발자크의 작품을 한두 가지 특성으로 정리하기는 불가능하다. 『인간극』에는 선한 인물도 많이 등장하고, 유토피아적인 주제를 담은 소설들도 있다. 그러나 발자크의 선인들이 악인들에 비해 선명하게 기억되지 않고, 『시골 의사』(1833), 『마을 사제』(1841), 『현대사의 이면』(1848)과 같은 건설적인 작품들이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런 경우에 발자크의 예리함과 통찰력이 다 발휘되지 않았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 외 『인간극』에는 온갖 주제들이 얽혀 있어서 단지 당대 사회의 보고서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연애 소설, 심리 소설, 모험 소설, 역사 소설, 철학 소설 등 그의 작품들 안에 여러 성격들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철학 연구』에 속하는 소설들은 ‘사실주의 소설’들과는 판이한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신비주의, 환상성, 스베덴보리주의(신비주의가 가미된 기독교의 한 형태. 스웨덴 철학자 스웨덴보리가 창시함)가 가미되었다. 이런 작품에서 발자크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의 숨은 근원들을 탐색하고자 했다. 그에게 정신과 물질은 연결되어 같은 법칙에 따르므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현실과 연관된 ‘초현실’까지 꿰뚫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인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평하지 않았던가: “나는 발자크가 뛰어난 관찰자로서 명성이 높다는 점에 매번 놀란다. 내게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이 계시자, 그것도 열정적인 계시자라는 데 있다고 여겨진다.”

 

정 예 영 /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그림 설명 및 출처

– 그림1: blog.naver.com/misope810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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