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호 인문학술1: 장 폴 사르트르] 사르트르, 존재와 현존의 변증법

현상, 즉 의식에 주어진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그 대상의 존재 방식을 기술하는 일과 동일하다. 대상은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대로 존재하므로 현상을 제대로 기술한다면, 우리는 대상의 참다운 존재 양식을 가능케 하는 대상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상에 대한 관점은 학자들마다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으로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관점이 그러하다. 이에 현상학에 대한 두 학자의 관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사르트르, 그는 누구인가

 

1905년이 태어난 사르트르는 1980년 4월 16일에 사망한다. 그리고 사흘 뒤 그의 장례식이 납빛 파리의 하늘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몽파르나스와 생제르맹 거리는 5만 명으로 추산되 는 대부분 젊은이들인 애도 인파로 넘쳐났다. 도대체 사르트르는 누구였기에 이 정도인가? 그의 사후 20년이 흐른 뒤,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사르트르의 평전을 출간하면서 『사르트르의 세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가 하면, 들뢰즈는 “마지막 철학자는 사르트르야. 알겠나. 우리 모두는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계약 결혼이니 노벨상 수상 거부니 하는 영웅적인 행각을 제외하고도, 사르트르는 철학, 정치, 역사, 문학, 연극, 예술, 연애 등에 관련해서 철저하게 실천적인 그야말로 전천후 지식인이었다. 20세기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사상적인 이 거인에 대해 짧은 글로 그 면면을 살필 여유도 없거니와 필자가 그럴 수 있는 연구도 되어 있지 못하다. 다만, 그를 불세출의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게 한 그 유명한, 하지만 난해하기로 소문난, 1943년에 발간한 그의 주저『존재와 무』에 담긴 내용만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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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현존의 구분

 

원전으로 720여 쪽에 달하는 『존재와 무』는 ‘현상학적 존재론에 대한 시론’이라는 부제가 일러주듯이, 흔히 존재한다고 여기는 갖가지 것들을 근원적으로 분석한다. 책상 위의 재떨이도 존재하고, 그 재떨이의 모양이나 색깔도 존재한다. 주체도 존재하고 대상도 존재한다. 의식도 존재하고 몸도 존재한다. 눈도 존재하고 시선도 존재한다. 나도 존재하고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 개인도 존재하고 사회도 존재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존재하고 모든 것인 것도 존재한다. 기타 등등.

 

그런데 사르트르는 이렇게 ‘존재한다(etre)’라는 말을 함부로 붙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에 관한 사르트르의 논변을 나름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흔히 이렇게 갖가지 것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것들을 인식하는 의식의 활동이 전제되어 있다. 그 의식 활동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 갖가지 것들이‘현상’하게 되는 근본 계기이자 터전이다. 그런데 의식 활동은‘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적인 조건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고정된 자신을 확보할 수도 없고 또 고정된 자신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의식 활동은 이미 늘 자신이 아닌 것이고 자신인 것이 아니다.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고정된 자신이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의식활동이 아닌 의식은 없다. 따라서 의식은 존재하지 않고 현존할(exister) 뿐이다.

 

사르트르는‘자신인 것’이 아니고 동시에 ‘자신이 아닌 것’으로서 존재하는 그 방식을 일컬어 현존(現存, existence)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현존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의식뿐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특별히 ‘대자존재(對自存在, etrepour-soi)’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대자존재로서 현존하는 나는 이미 늘 나 자신이 아니다. 이때‘나 자신’은 자기 동일적인 내용으로서 규정된 나를 말한다. 사르트르는 이같이 자기 동일적인 내용으로서 규정된 나를 ‘즉자존재(卽自存在, etre-en-soi)’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즉자존재는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etre)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존재함(etre) 또는 존재(etre)와 현존함(exister) 또는 현존(existence)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사르트르의 존재론을 아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타인

 

대자존재로서 지금 여기에서 현존하는 나는 즉자존재로서 규정된 나 자신을 이미 늘 부정·초월·무화함으로써 그렇게 현존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대자존재로서 현존하는 나의 의식을 ‘아무 것도 아닌 것(le rien)’또는 ‘무(le neant)’라고 달리 말한다. 사르트르는 우리 인간이 대자존재로서 현존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현존하면서 이미 늘 부정·초월·무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자유가 성립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르트르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인간은 현존하지 않는 셈이고, 현존하지 않는 인간은 없으니, 인간이면 누구나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결코 그럴 수 없지만, 만약 누군가가 자기 동일적인 즉자존재로서 규정된 자기 자신만을 인정한다면, 그는 아예 인간이 아닌 셈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그런데 이 돌이킬 수 없는 나의 근본적인 자유를 무시하려는 자가 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이다. 타인은 대자존재로서 현존하는 나를 곧이곧대로 파악할 길이 없다. 타인은 나를 그저 자기 동일적인 즉자존재로서 규정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타인은 나를 현존하는 자로 보지 못하고 오로지 존재하는 자로만 볼 수 있음으로써 원리상 나의 근본적인 자유를 인정하고 싶어도 인정할 수 없는, 나에게서 근원적인 현존으로서의 인간성을 박탈해버리는 대단히 위험한 존재인 셈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사르트르가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게 보는 것 같아 저어기 염려가 된다.

 

그런데 이 타인 관계를 염두에 두게 되면, 자기 동일적인 즉자존재로서 규정된 나 자신은 기실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타인으로부터 주어진 ‘대타존재(對他存在, etre-pour-autrui)’임을 알게 된다. 타인이 없이는 나의 자기 동일적인 즉자존재가 성립할 수 없는 셈이다. 그런데 나의 자기 동일적인 즉자존재가 없이는 그것을 부정·초월·무화하는 데서 성립하는 나의 현존적인 대자존재 역시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타인이 없이는 나의 현존적인 대자존재가 성립할 수 없고, 따라서 나의 근본적인 자유도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 욕망

 

한편 사르트르는 대자존재는 즉자존재와 끊임없이 하나가 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르트르의 독특한 욕망 개념이 성립한다. 비록 대자존재로서 현존하는 내가 근본적으로 자유롭긴 하나 그 자유로써 자유 자체가 성립하는 존재론적인 기반이 되는 즉자존재로서의 자신과 하나를 이루고자 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라 지칭하면서 ‘존재 욕망(desir d’etre)’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현존하는 한에서는 이 욕망의 충족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 사르트르가 말하는 인간의 존재 욕망은 일체의 타인(들)과의 하나 됨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데서 성립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르트르는 사랑을 위해서는 나와 타인이 애무를 통해 완전한 ‘살(la chair)’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살은 일체의 일상적인 규정을 벗어나 순전히 감각적이어서 그저 자유로울 뿐인 몸을 일컫는다. 그러니 어떻게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만약 타인과의 하나 됨이 온 우주와의 하나 됨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사르트르가 말하는 사랑은 곧 온 우주와의 합일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때 온 우주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을 사르트르가 말하는 순수 즉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순수 즉자는 흔히들 말하는 바에 따르면 순수 감각적인 물질이다.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그런데 사르트르는 이 순수 즉자는 완전한 밀도를 지닌 충만한 존재이고, 그 스스로 감압(減壓)을 일으켜 무인 간극을 형성함으로써 자신에게서 의식인 대자존재의 현존을 발생시킨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는 기생충처럼 존재의 심장에 붙어 있다”라고 말한다. 비록 이견이 있겠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사르트르의 존재론이 근본적으로 유물론적이라고 말하게 된다. 이에 우리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Sein)와 사르트르가 말하는 존재(etre)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조광제 / (사)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

* 그림설명및출처

– 그림: Sartre, Jean Paul (1905~1980)

– 출처: www.wikipedia.org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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