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호 인터뷰] 신기전에서 나로호까지, 우주를 향한 도전-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채연석 교수

채연석 교수는 본교에서 학·석사를 졸업하고 후학 양성은 물론, 우주 연구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주발사체 분야의 권위자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원장으로 재직하며 나로우주센터 건설과 나로 우주발사체 사업을 출범시켰고, 이 사업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지난 15일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채 교수를 만나 세종 때의 신기전을 시작으로 나로호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로켓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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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시대로의 첫발, 나로호의 연구 및 개발 과정

Q. 나로호 발사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두 번의 실패 끝에 성공했는데 이전 발사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나로호 1차 발사는 2009년 8월 25일에 진행됐습니다. 당시 인공위성을 보호덮개인 페 어링(Fairing)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서 실패했지요. 1단 로켓에 있는 이 페어링이 분리 되어야만 2단 로켓이 속도를 높여 목표 궤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페어링의 한 쪽만 분리되는 데 그치면서 속도를 높이지 못했고, 무게 중심도 어긋나서 비행 방향 역시 계획했던 궤적에서 벗어나게 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상에서 페어링 분리 실험을 많이 했지만 우주는 지구와 달리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로, 변화된 환경에 대한 경험 부족에서 온 실패였습니다. 2010년 6월 10일 실시된 2차 발사에 대해 우리는 발사체가 200Km 상공 도 도달하지 못한 채 폭발했기 때문에 우리는 러시아가 제작한 1단 로켓의 문제를 제시했 지요. 하지만 러시아는 한국이 제작한 2단 로켓의 문제가 1단 로켓의 폭발에 영향을 줬다 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양측 각각의 로켓 수리를 통해 2013년 1월 30일 3차 발사 때 우주 시대로의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Q. 나로호의 발사 실패가 거듭되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는데 연구원 내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타국가도 이런 실패를 경험했는지 궁금합니다.

 

나로호는 부품이 20만 개나 되는 아주 복잡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합니다. 때문에 발사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부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고 오랜 경험이 전제되어야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경험이 부족했던 상황으로, 어찌 보면 실패가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 각합니다. 실제로 1,2차 발사에 실패했을 당시 항공우주관련 연구원들은 낙심하기보다는 실패를 받아들이고, 다음 발사 작업을 준비했습니다. 오히려 언론 매체들이 형성한 여론 때문에 힘들어 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연구자들 스스로가 극복해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로, 발사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성공을 거뒀습니다. 한 예로 최근 일 본이 우주발사체의 독자적인 개발에 성공을 이루었지만 지난 15년 동안 미국의 1단 로켓 17여개로 발사 연습을 해왔다는 것을 들 수 있지요.

 

Q. 일반적으로 나로호와 같은 우주발사체는‘하늘이 허락한 특정한 시간’에만 발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때는 언제이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발사가 가능한 특정한 시간을 바로‘하늘의 문이 열리는 시간(Launch window)’이라 고 합니다. 이는 단지 지상에서의 맑은 날씨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로호를 포함한 상당수의 인공위성은 태양 에너지를 동력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지 판이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 간이 맞지 않으면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인공위성 작동이 불가능합니다. 이에 발 사 전 준비 시간까지 고려하여 발사 시간을 정합니다.

 

Q. 많은 국가가 기술협력 대상으로 검토된 것으로 알고있는데, 특별히 러시아와 함께 기술 개발을 진행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에게 로켓 기술을 이전해 주겠다고 했던 나라로 러시아와 프랑스 등이 있었지만, 러시아만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로켓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미래에도 경쟁력 있는 로켓 기술을 찾고 있었지요. 액체산소와 등유를 사용한 추진제가 가장 경제적이고 성능이 우수하다 생각했고, 때문에 이러한 추진제를 사용할 수 있는 로켓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미국과 러시아뿐이었는데, 미국은 다른 나라에게 로켓 기술을 팔지 않는다는 정책이 있어 러시아가 협력국가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1단 로켓(전·후방 동체부, 엔진을 포함한 연료탱크부)은 러시아가, 2단 로켓(인공위성부분과 페어링 부분)은 한국이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주요국 로켓 개발과 우리나라의 연구기관

Q.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러시아, 프랑스 등 여러나라가 발사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항공우주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큽니다. 우주 발사체의 개발은 한 국가의 우주기술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 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도와줍니다. 즉, 자국의 필요로 인해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도 있고, 필요로 하는 다른 나라에게 제작 요청을 받고 인공위성을 만들어서 수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항공우주산업은 미래의‘먹거리 산업’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관심은 갖고 있으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미래의 첨단산업을 확보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넓히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에 북한에서 광명성 3호를 실은 은하 3호를 발사했습니다. 이것을 나로호와 비교했을 때, 북한의 로켓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2012년 12월 12일 북한이 광명성 3호를 탑재하여 발사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는 미사일로 쓰기 위해서 많은 돈을 투자하여 개발한 것입니다. 이 로켓은 북한이 모든 부품을 국산화 시켜 제작한 것입니다. 또한 은하 3호는 발사체를 세 부분으로 나눠 제작한 3단 로켓으로, 2단으로 구성된 나로호와는 그 구성이 다르다고 볼 수 있죠. 또한 현재는 북한이 우리나라보다 더 큰 미사일을 개발한 듯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나라가 북한에 비해 기술과 자본이 뒤처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 개발을 제한하고 있는 전 세계의 뜻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평화적인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위성만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Q. 타 국가의 경우 독립된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발사 일련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나로호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산하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주도적으로 개발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연구과정에 미친 영향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이전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하여 교육과학기술부를 신설했고, 이에 따라 교과서 제작, 시험 출제 등 다뤄야 할 사항이 많은 이 기관은 과학기술 쪽의 지원과 배려가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통합의 문제점이 제기된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지난 개발 진행의 부서에 대해서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았던 부분이 있어서 아쉽습니다. 이제 새로운 박근혜 정권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업무와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일부 업무를 이관하여 미래창조과학부로 개정될 예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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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업적을 이어받은 전통 무기 복원

Q. 과학기술자로서의 삶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좋았습니다. 만화 속에서 아이들이 과학자에게“우주선을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면 과학자는 만물박사처럼‘뚝딱’하고 우주선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나도 우주선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자라는 직업이야말로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롭게 찾아내고 창조해 낼 수 있는 직업으로 국가와 국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Q. ‘전통 화학무기 복원의 아버지’로 불리실 만큼 많은 전통 무기들을 복원하셨는데, 이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 시간에 중국에서 화약을 개발하고 로켓을 제작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가까운 우리나라에서도 로켓을 만들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최무선이 고려 말 화통도감에서 화약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당시 그가 로켓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로켓 연구에 몰두했고, 그 과정 중에 폭발 사고가 일어나 한쪽 고막을 잃게 되면서 로켓과학자로의 성공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더 적극적으로 전통 화학무기 복원에 대해 연구했지요. 저는 선조들이 이룬 훌륭한 업적을 우리가 복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손해와 희생이 있더라도 복원의 연구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Q. ‘600년 전의 로켓’으로 불리는 신기전이 복원에 성공했는데, 신기전과 나로호를 비교해 보면 실제로도 비슷한 부분이 많은지요?

 

로켓의 설계도와 같은 1급 비밀문서들은 다 소각되기 마련인데, 세종 때 만들어진 신기전은 유일하게 설계도가 남아 있어서 복원이 가능했습니다. 이 설계도에는 구두로는 자세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밀한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로켓이라는 것 자체는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를 사용하고, 특히 신기전의 한 종류인 산화신기전과 나로호는 모두 2단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신기전은 나로호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지난 3월 14일 ‘제420주년 행주대첩기념제’에서 신기전 발사 시연이 있었는데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신기전은 제가 대학교 때 연구하여 1975년에 역사학회에 발표했으나 선조들이 로켓을 발사했었다는 사실은 당시 너무 획기적인 일이라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전투에서 신무기를 사용하여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신무기를 복원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제가 그 프로젝트를 맡아서 복원을 완료했습니다. 이에 따라 1980년에 행주산성 유물기념관이 개관했고, 그 곳에 신기전과 화차를 만들어 전시해 놓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신기전 발사 시연은 모형 복원과 연구 이후 실제로 발사되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을 계속 갖고 있던 중 33년 만에 비행을 하게 된 것으로, 개인적인 꿈과 목표가 이루어진 의미가 큰 행사였습니다. 이것이 개인적인 꿈의 실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론을 통해 이 일이 비춰지고, 그것을 통해 국민들에게 우리가 과학기술에 재능을 지닌 민족이라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Q. 끝으로 원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목표와 꿈이 없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목표와 꿈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설정할 때 자기만족에 의해서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목표를 설정한 이후에는 흔들리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에는 문제점이 수반되고 고통과 어려움 또한 당연히 존재합니다. 성공을 바라보는 자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담·정리 _ 강가람|remember-gr@khu.ac.kr     사진 _ 한승원|aimar@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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