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호 인문학술: 벤야민의 도시인문학] 발터 벤야민의 메트로-맑스주의

도시적인 분위기

대도시(메트로폴리스)에 대한 벤야민의 역사유물론적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베를린-나폴리-모스크바-파리로 이어지는 벤야민의 삶의 궤적을 살펴야 한다. 그의 일생은 실상 이 도시들을 선분으로 연결한 성좌였다. 대도시에 대한 벤야민의 지적 관심은 1913년 그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립 대학에서 ‘대도시와 정신적 삶’에 관한 게오르그 짐멜의 강의를 들으면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블로흐, 숄렘, 루카치 등을 만났다. 대도시에 관한 벤야민의 탁월한 감각은 짐멜에게서 발원한 것이었고, 훗날 그 물줄기는 ‘상품’과 ‘군중’을 중심으로 거대한 폐허가 되어버린‘파리’를 분석하는 데까지 확장되었다. 도시체험의 고유성을 ‘충격’에서 찾는 짐멜의 사유는 벤야민을 거쳐 보들레르의 ‘충격’, ‘상실’과 연결된다. 한편 그는 1924년에는 독일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를 피해 탈출한 나폴리의 카프리 섬에서 동지이자 연인인 아샤 라시스를 만났고, 다공성(porosity), 즉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확연하게 구분된 근대적 도시의 삶과는 다른 지중해적인 무경계성을 목격했다. 1926년 12월부터 2개월 동안은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를 기록한다는 핑계로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아샤 라시스를 다시 만났다. 그에게 혁명 직후의 모스크바는 새 것과 옛 것, 실현되지 못한 꿈과 현실이 혼재되어 있는 ‘초현실주의적공간’으로 다가왔다. 1926~1927년 벤야민은 파리에서 지내면서 프루스트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고, 1933년 이후에는 나치를 피해 파리에 머물면서 하루 12시간 이상 국립도서관에서 책을 쓰고 자료를 수집했다. 이 자료더미가 미완의 대작『아케이드 프로젝트』였다.

벤야민이 살았던 20세기 초반은 자본주의와 파시즘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도시, 자본주의, 그리고 파시즘의 도래라는인류사의 몰락기에 직면한 유럽의 문학·예술은 그것에 격렬하게 반응했고, 루카치, 블로흐, 하이데거 등의 사상가들 역시 저마다의 사상적 돌파구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당시 벤야민은 현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비선형적인 서사 구조로 그려낸 알프레드 되블린의『베를린 알렉산더 광장』(1929)과 1913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시기 벤야민은 자본주의와 파시즘으로 요약되는 문명사의 전환을 배경으로 19세기의 파리와 20세기의 파리를 비교하는 작업을 구상했다. 왜 ‘파리’였을까? 그것은 19세기의‘파리’는 한 국가의 수도가 아니라 유럽, 나아가 모더니티의 수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19세기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벤야민의 마지막 글「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기록되어 있다. “과거로부터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수 있는 재능이 주어진 사람은 오로지, 죽은 사람들까지도 적으로부터는 안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있는 특정한 역사가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벤야민을 철학자나 문예비평가로 기억하지만, 그는 ‘역사가’를 자임했다. 역사가로서의 벤야민은 20세기 자본주의의 유년기라고 말할 수 있는 19세기를 분석하여 거기에서 혁명의 동력을 얻고자 했다. 그것은 현재를 ‘메시아’가 도래할 수 있는 시간/조건으로 바꾸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두 개의 시선, 시선의 변증법

벤야민은 아우라(“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 현상”)의 외부에서 예술을 사유했다. 오해와 달리 벤야민은 결코 아우라의 상실을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예술을 ‘아우라’의 영향력에서 분리시키려 했는데, 그것은 ‘아우라’의 예술이 독일낭만주의의 반동적 성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휠덜린으로 대표되는 독일낭만주의 문학과 그것에 대한 하이데거의 철학적 옹호에서 확인되듯이, 독일낭만주의는 민족성의 신화에 기초한 대지의 상상력에 긴박되어 있다. 히틀러의 파시즘은 바로 이 민족적 신화를 예술을 이용하여 대중의 내면에 각인시키려 했고, 심미화 과정으로서의 예술은 아우라의 권력적 효과를 통해 그 역할을 수행했다. 벤야민에게 ‘아우라’는 심미화된 이데올로기였고, 종교였고, 권력이었다. 벤야민이 비판한‘정치의 예술화’란 이처럼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기 위해 아우라의 예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벤야민은 ‘기술’의 힘을 빌려 이것을 해체하기 위해 ‘예술의 정치화’를 주장했다. 그는 ‘기술’을 ‘자연’에 대한 지배로 이해하는 당시의 일반적인 사고에 반(反)하여 기술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류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오히려 기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행해진 유토피아에 대한 배신을 비판했다. 벤야민에게 ‘기술복제’란 부정해야 할 현상이 아니라 현대의 조건 그 자체였다. 벤야민이 사진과 영화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벤야민은 전형적인 도시인이었다. 1938년에 쓴『베를린의 어린 시절』의 ‘머리말’에서 벤야민은 자신의 글쓰기가 “대도시의 경험이 시민 계급의 한 아이 속에서 침전되며 생겨나는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이미지들이 “이후의 역사적 경험을 예시”해 줄지도 모른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희망의 불꽃을 점화”(「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하려는 만년의 기획과 동일한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과거에 대한‘동경의 감정’이 정신을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쓴다. “ 나는 지나간 것(과거)의 우연적이고 전기적(傳記的)인 회복 불가능성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사회적인 회복 불가능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 그러한 감정을 억제해보려고 했다.” 벤야민에게는 과거에 대한 동경과 향수의 감정이 없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가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과 달리 태생적인 도시인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과거에 대한 향수가 파시즘이 도래한 현실에서 어떠한 역사철학적 출구도 만들어주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동경과 향수의 감정 없이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두 개의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는데, ‘아이’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이 그것이다. 벤야민은 이 두 개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를 왕복함으로써 ‘꿈’과 ‘각성’의 드라마를 쓴다. 벤야민은 ‘꿈’의 정신분석이라는 프로이트의 아이디어를 시대와 집단에게 적용했다. 벤야민의 사유에서 전자는 ‘몽상’의 시선이고, 후자는 ‘환멸’의 시선이다. 그는 ‘아이’의 시선으로 현재를 보고, ‘어른’의 시선으로 과거를 본다. 그는 ‘꿈’의 세계에 ‘환멸’을 도입함으로써, 그리고 ‘환멸’의 세계에 ‘꿈’을 도입함으로써 시간의 변증법을 시도한다. ‘아이’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 ‘꿈’을 투사하여 그곳을 몽환적인 세계로 경험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기억하는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그 몽환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선의 외삽(外揷)은 ‘어른’이 현실을 폐허로 경험하는 것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어른’이 페허로 인식하는 현재에서 ‘아이’는 ‘꿈’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러한 시선의 변증법 속에서는 과거가 현재로, 현재가 과거로 투사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꿈’의 세계가 몰락의 과정으로 이해되고, 희망 없는 몰락의 시간이 ‘꿈’의 세계로 이해되게 된다. 이러한 시선의 변증법이 ‘파리’에 적용된 것이 곧『아케이드 프로젝트』이다.

 

193-3-1두 개의 파리, 시간의 변증법

벤야민에게‘파리’는 수많은 도시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파사주’ 역시 한때 유행했던 건축물의 이름에 그치지 않는다. 벤야민에게‘파리’는 모더니티의 축도(縮圖)이고, ‘파사주’는 ‘파리’라는 대도시의 메타포 그 자체이다. 그곳은 현대가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상징적인 시공간이다. 이는 벤야민 만년의 대작『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파리’와 ‘파사주’가 차지하는 비중을 통해 쉽게 확인된다. 그런데 벤야민은 ‘파리’에 관한 관상학적 독해에서 왜 그토록 ‘파사주’에 관심을 집중했던 것일까? 그것은 우선 ‘파사주’의 특징, 즉 통과성 때문이었다. 19세기 파리에서 유행처럼 건설된 파사주의 가장 큰 특징은 양방향으로 열려 있는 통과성에 있었다. 말 그대로 ‘파사주’는 군중이 흘러다니는 ‘통행로’였다. 그곳은 실내이면서 거리이고, 안이면서 밖이며, 19세기 유럽의 기술력이 응축된 건축물이면서 태고의 신화적 요소가 포함된 시공간이고, 20세기적인 경계가 확고하게 자리 잡지 않은 특유의 시공간이다. 파사주는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건축된 비현대적인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사주’는 벤야민이 나폴리에서 목격한 다공성의 파리 버전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이제 우리는 벤야민이『베를린의 어린 시절』에서 과거와 현재, 아이와 어른이라는 시선의 변증법을 시도했으며, 그것을『아케이드 프로젝트』의‘파리’독해에도 적용했다는 사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발상은 19세기의 파리와 20세기의 파리를 비교하는 것, 그러니까 20세기의 파리에서 19세기의 파리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19세기의 파리는 근대의 태동기, 즉 근대의 유년이고, 20세기의 파리는 그 유년의 꿈이 몰락한 폐허의 상태이다. 이것이 벤야민의 기본적인 역사유물론적 인식이다. 『베를린의 어린
시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벤야민은 여기에서 19세기-유년의시선으로 20세기의 폐허를 보고, 20세기-어른의 시선으로 19세기의 꿈을 본다. 벤야민은 이러한 근대의 탄생과 몰락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파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근대성의 유년기인 19세기의 파리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벤야민에 따르면 발전된 기술력에 의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의 꿈이 존재했던 시기이다. 물론 19세기는 그 꿈이 부패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그 부패의 결과가 바로 폐허로 변한 20세기의 파리라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20세기의 파리는 ‘지옥’을 닮았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판타스마고리(환등상)’라는 비유를 도입하는데,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인간과 상품의 위계가 전도된 상태를 뜻한다. 자본주의라는 인위적인체제가 마치 자연적인 것처럼 인식되고, 상품이 ‘사용’의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 되어버린 물신의 세계.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세대들의 삶에서도 관철되고 있는 하나의 단계적 과정으로서의 각성. 잠이 이러한 과정의 최초의 단계이다. 어떤 세대의 유년기의 경험은 꿈의 경험과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유년기의 경험의 역사적 형태가 꿈의 형상이다.

 

어느 시대든 이러한 꿈을 향한 측면, 즉 어린아이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 이전 세기에 이러한 측면은 아케이드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이전 세대들의 교육이 전통 속에서, 즉 종교적인 가르침 속에서 그러한 꿈을 해석해준 데 반해 오늘날의 교육은 아이들의 기분전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 새물결,
2006, 905쪽)

 

벤야민은‘파사주’를 비롯하여 기술적 유토피아의 비전에 따라 지어진 19세기의 건축물들을 ‘꿈의 집’이라고 불렀다. 이 ‘꿈’은 근대성의 유년기가 지녔던 ‘꿈’이며, ‘아이’의 시선으로 19세기를 바라보았을 때 생겨나는 ‘몽상’의 흔적이다. ‘파사주’는 이 꿈의 건축물들의 원형(原形)이다. 그렇다면 이제 19세기의 파리와 20세기의 파리를 시선의 변증법으로 살피는 과정을 19세기의 파사주와 20세기의 파사주에 동일하게 적용해보자. 벤야민에 따르면 백화점의 전신이기도 한 19세기의 파사주는 다공성의 시공간이었다. 19세기에 그곳은 댄디, 모던 걸, 가수들, 산책자들 등 부르주아와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세계였다. 벤야민이 시공간의 다공성을 통해 발견하려는 것은 반(反)자본주의적 가능성이다. 그런데 벤야민이 살고 있는 20세기의 파사주는 그러한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세계, 19세기의 꿈이 부패하여 악취를 내뿜는 몰락의 시공간이었다. 자본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이제 그곳은 걸인과 매춘부의 공간, 음산하고 활기를 잃어버린 주변적 세계가 되었다. 벤야민은 산책자가 샌드위치맨이 되고, 모던 걸이 매춘부가 되고, 댄디가 걸인이 되고, 가수가 광대가 되어버린 이 변화를 꿈의 19세기와 폐허로서의 20세기라는 관점에서 연결시킨다. 매춘부란 누구인가? 그는 19세기에는 상품의 소비 주체였으나 이제는 그 자신이 상품이 되어버린 존재가 아닌가. 이 역사적 변화를 벤야민은 폐허라고 명명하고, 페허를 마치 자연적인 상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20세기를 깊은 잠에 빠진 시대라고 규정한다. 물론 벤야민이 19세기와 20세기를 단순하게 ‘꿈’과 ‘폐허’의 이분법으로 구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태어나는 순간 버려지는-이탈로 칼비노는『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가상의 도시 레오니아에서는 최신형 상품들이 만들어지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고 썼듯이-상품의 속도성을 ‘사산’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 했고, 19세기가 꿈의 시대이면서 그 꿈이 부패하기 시작한 속도의 시대였음을 증명하려 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무한히 반복하는 유행의 ‘영겁회귀’를 통해서 근대는 신화와 종교로부터 벗어난 합리성의 시대가 아니라 끊임없이 태고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상품 자체를 신으로 숭배하는 또 다른 신화와 종교의 시대라고 비판했다. 19세기 중반 오스망 대로를 만들 때, 프랑스인들은 그 대로의 끝에 고대의 조각상을 가져다놓지 않았는가. 요컨대 벤야민의 ‘파리-파사주’는 19세기에는 다공적이고 비(非)자본주의적인 시공간이었으나 20세기에 이르러 다공성을 상실한 자본주의적 시공간이 되어버렸다.

 

보들레르

19세기 파리 분석에서 벤야민이 가장 신뢰하는 예술가는 보들레르이다. 보들레르는‘도시’를 시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시인이며, 벤야민이 19세기의 중요한 주체상(像)이라고 말했던 산보객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벤야민의 말처럼 산보객이 모험가의 형상으로 나타난다면, 19세기의 파리를 활보하며 순간적인 도취를 시의 자양분으로 삼은 보들레르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모험가였다고 말할 수 있다. 보들레르는「지나가는 여인에게」에서 홀연히 나타났다가‘군중’속으로 사라지는 한 여인을 등장시킨다. 이는 우연성과 순간성을 긍정하는 모험가-산보객의 사랑을 의미한다. 보들레르에게 대도시의 사랑은 우연한 만남에서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찰나의 순간에 사라지는 생성과 소멸의 순간적인 반복인데, 그것은 곧 ‘유행’의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이 사랑-유행에서 ‘상품’의 운명을 읽었다. 그런데 ‘상품’에 초점을 맞추고 읽으면 보들레르의 인물들 대부분이 ‘상품’에 반(反)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들레르의『악의 꽃』의 중심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레즈비언이 그렇다. 레즈비언이란 생산, 즉 상품 경제에 반(反)하는 욕망의 소유자이다. 그는 ‘생산’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벤야민은 레즈비언을 보들레르의 영웅이라고 불렀다. 레즈비언은 ‘생산’의 외부인 순수한성(性)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에 저항한다.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시에서 주목한 또 하나의 형상은 ‘군중’이다. 보들레르는 A.E.포우를 번역하면서 ‘군중’을 내면화했다. 보들레르에게 인구의 유동적인 이동으로 인해 발생한 무정형의 인간군상, 즉 군중은 ‘충격’과 ‘매혹’의 대상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그것은 또한 ‘환상의 베일’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꿈과 신비를 해독하기 위해 기꺼이 군중과 결합했다. 하지만 보들레르의 ‘군중’에 대한 지지는 정확히 ‘형상’에 한정된 것이었다. 벤야민은 보들레르가 ‘군중’을 발견했으나 역사철학적인 시선을 결여하고 있어 그것을 단순한 도피처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보들레르에게 ‘군중’은 도피처였고, 그의 산책자는 ‘소비자’의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레즈비언과 군중, 그것은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시에서 찾아낸 현대적 영웅의 형상이었지만, 벤야민이 살았던 폐허의 20세기에 그들은 ‘꿈’의 혁명적 잠재성을 상실하고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로 존재하고 있었다.

파리에 관한 벤야민의 인상학적 독해는 결국 근대의 유년기인 19세기의 꿈을 확인하고, 그것이 어떤 부패 과정을 거쳐 20세기에 폐허가 되었는가를 질문하려는 기획이며, 과거-유년에 아직 존재하는 혁명의 에너지를 재발견하여 현재에 투사함으로써 ‘지금-시간’을 ‘메시아의 도래’가 가능한 혁명적 조건으로 충만한 시공간으로 채우려는 사유의 모험이었다. 이를 위해 벤야민은 기꺼이 버려진 파편들을 수집하면서 도시를 산보하는 수집가-역사가가 되기를 자청한다. 그에게 유년/과거-꿈에 대한 기억은 지옥/현재-폐허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열쇠였다.

고 봉 준 / 후마니타스칼리지객원교수

 

* 그림설명 및 출처

– 그림1: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출처 : www.editoririuniti.net)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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