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호 인터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대중과 호흡하다 –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

 

박영선 의원은 지난 20여 년간 기자와 앵커 생활을 하며 쌓은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재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감하는 부드러운 통솔력, 즉 여성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지난 3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찾아가 여성 지도자로서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 박영선 의원을 만나 봤다.

 

우리 사회의 여성 리더

Q. 현재 많은 여성들이 사회 곳곳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른바 ‘여성 리더십시대’가 열렸는데, 여기서 주목하는 ‘여성다움’이란 무엇일까요?

각 시대의 환경 변화에 따라 20세기 산업화 시대엔 남성 리더가 지닌 근육질적인 특성을 최고로 꼽았지만, 21세기는 정보화 시대로 섬세한 어머니의 자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적 속성이 각광받는 이유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요즘 특히 ‘힐링(Healing)’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지도자에게도 어머니처럼 자상한 리더십이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 섬세함, 부드러움 등은 상대적으로 장점이자 강점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결국 여성다움이 이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강한 것이 좋지만 지나치면 부러지기에 이 세상을 포용하는 여성다움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남성적인 추진력도 갖고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Q. ‘박영선’하면 첫 MBC 방송국 여성 특파원, 첫 여성 경제부장, 첫 여성 대변인, 첫 여성 정책위의장과 같이 ‘첫 번째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뒤따릅니다. 시대를 앞서 나간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기자 생활을 할 때는 여기자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각을 하면 금세 눈에 띄었기에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출근을 했었죠.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두 배의 노력까지는 필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부딪히곤합니다. 때문에 적어도 1.5배의 노력을 더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려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회도 있었지요. 이와 관련해 제가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북한과 러시아를 방문하며 현대그룹과 한국을 알리기 시작할 무렵, 모든 언론은 그의 행보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기자들은 그를 취재하기 위해 매일같이 쫓아다녔는데, 한 번은 질의응답 할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그 때 정주영 회장이 기자들을 쓰윽 둘러보더니 저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 소도둑놈 같은 남자들만 있네. 남자들은 저리 가고, 거기 여기자! 질문해 봐요.” 당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그런 특혜를 많이 누렸습니다. 오히려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노력하면 훨씬 더 유리하고 기회가 많아지기도 합니다.

 

Q. 국민의 대표자로 일하면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으로서 제게 주어진 일을 하다보면 새벽에 나와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의를 위해 원칙대로 일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지요. 이를 위해 저는 삶을 힘겹게 하는 상황들에 휘둘리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인내심을 기르고자 합니다.이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겸손하고 따뜻한 모습이야말로 제가 지향하는 리더의 모습이지요.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상선약수(上善겭水)’입니다.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 출마할 때, 시민들에게 “흐르는 물처럼 낮은 데로 임해서 국민을 받드는 정책이 최고의 정치이자 행정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낮은 데로 임해 세상을 선하고 이롭게 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그 때 그 마음 그대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따뜻한 법치를 이루고자 합니다.

 

Q.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기회가 균등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17대 국회에선 ‘경제 민주화’를 화두로, 18대 국회에선 ‘검찰 개혁’이란 구호를 걸고 노력했습니다. 이는 다시 ‘젊은이들을 위한’, ‘ 기회가 균등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지표로 이어져, 올해 <기회의 나라, 대한민국!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 도입이 필요한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토론회는 로스쿨 제도를 정착시키면서 로스쿨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시험 제도가 필요한가를 묻고 답하는 자리였습니다. 이곳에서 법조계와 학계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의견을 교류할 수 있었죠. 앞으로 사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로스쿨생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두 번째 토론과 이를 입법화시키는 과정에 대한 세 번째 논의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짧고강렬했던순간,‘ 나’를만나다

Q. 젊은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열정은 무엇이었나요?

대학시절 동안 우리 학교 ‘대학의 소리 방송(V.O.U)’활동을 3년 정도 했을 만큼 방송기자란 직업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제가 보낸 20대의 대학 캠퍼스는 진지하고 치열했으나 그속에 낭만도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회에 내놓기 전,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다듬는 과정이 곳곳에 존재했지요. 저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고 고민했습니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고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했고, 이것이 저의 직업과 미래를 결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항목이 되었습니다.

 

Q. 방송국 일을 하며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잊지 못할 순간을 돌이켜보면 기자와 앵커로서 보냈던 세월 만큼이나 참 많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1980년대 초, 아침 6시 뉴스를 진행하던 시절에 이미 뉴스가 시작된 6시 5분에 스튜디오에 도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튜디오는 난리가 났었고, 급히 방송을 모두 마친 후에 이곳저곳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느라 제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약속에 대한 강박이 있던 때였습니다. 기자로 지내던 시절의 습관도 있었고 남성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기에 자기 관리가 필수였던 터라,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곧 일을 잘 해내지 못한 것과 같았습니다. 특히 시간을 생명으로 하는방송 뉴스는더욱그렇죠. ‘ 걸음아날살려라’하고 달려가는 동안, 속으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기억날 정도로 그날의 실수는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아찔했던 6시 5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5분이 준 깨달음은 이후 방송을 하는 데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순간을 모면하지 않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제가 큰 기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습니다.

 

Q. 방송에 입문하면서 아나운서, 기자로 널리 이름을 알리셨습니다. 1989년 모스크바 위성 방송, 2002년 서울-평양 생방송 등 다양한 업적을 쌓으셨는데, 2004년에 홀연히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급작스러운 변화는 무엇이 계기로 작용하였나요?

사실 제 경우는 처음부터 정치를 할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 경제와 사회 정의를 실현해 보고 싶었지만, 정치가가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할 때 열린우리당의 대변인으로 제의를 받았고, 그것이 정치인으로서 입문이었습니다. 기존 정치권의 긴 논평들과 달리 저는 방송기자와 앵커로서 핵심 전달에 익숙했던 터라 주요 논점만을 간략하고 짤막하게 대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신문기자들이 논평이 너무 짧다고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신선한 변화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당시 우려와 기대라는 엇갈린 반응 속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수 이상을 차지했으니, 저의 정계 입문도 성공한 셈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사람 사이 진심은 통한다

Q.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은 활발한 SNS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홈페이지는 물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지속적으로 의정 보고와 구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 가사처럼, 눈물 나도록 착하고 아름다운 우리 지역 사람들을 SNS 활동으로 알리려고 합니다.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 시대입니다. 모두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소식을 전하고 있죠. 스마트폰 가입 인구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핸드폰으로도 어디서든 검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언제든지 누구나 들어와서 우리지역이 어떻게 돌아가고, 무엇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도록 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많은 이웃들을 알게 되었고,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험의 폭이 훨씬 넓어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지요.

 

Q. 국회에는 남성이 다수인데, 여성 국회의원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펼친 소통의 기술은 무엇이신지요.

미국의 한 유명 정치인을 만나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녀가 제게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남자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당선 하나만으로 인정이 되지만, 여자는 당선되고도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기법과 기술이 무언가 특별하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여성이 되는 것. 그것이 소통의 능력을 키우는 정석이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소통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 간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먼저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Q. ‘ 2013년 자랑스러운 경희인상’을 받으셨습니다.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대학과 대학원의 등록금을 보면 학도의 꿈을 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알 수 있습니다. ‘취업이 로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 문제와 언젠가부터 점점 더 삭막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의 단면들이 학생들을 더욱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대한민국을 이제 기회의 나라로 만들어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기회가 균등하고, 따뜻한 법치가 이루어지는 공정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치고 힘들어 100번 넘어져도 101번째 꼭 일어나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세요.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과감히 변신해 계속 전진하는 멋진 젊은이로, 진정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참 일꾼으로 거듭나십시오. 그러다보면 꾸준함이 주는 희망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분과 저,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인재들이 양성되고, 결국에는 그 커넥션들이 모이고 모여 더 큰 힘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언제나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대담·정리 : 박혜영 │ hy000p@khu.ac.kr / 사 진 : 한승원 │ aimar@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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