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호 인문학술1: 숭례문 복원] 숭례문의 문화재적 가치와 복구 과정에 대하여

지난 5월 4일, 화재로 훼손됐던 숭례문이 5년 3개월의 복구과정 끝에 드디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보1호 문화재의 훼손은 국민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지만,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잊혀지고 주목받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로이 발굴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이에 본보에서는 두 편의 원고를 통해 숭례문 복구의 문화사적 의미와 복구과정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의 장을 마련하고 더불어 숭례문 자체의 인문지리학적 의미까지 확장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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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와 복원

 

흔히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잘못 사용하는 단어가 ‘복구(復舊)’와 ‘복원(復元, 復原)’이다. ‘복구’는 ‘옛 모습으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시간 기준은 다양하지만, 기본 뼈대가 있는 상태에서 훼손된 부분을 보완하여 훼손 전으로 되돌림을 뜻한다. ‘복원’은 그 모습이나 터가 없어져 흔적을 알 수 없는 것을 되살리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태조 때 창건된 경복궁의 규모는 378칸이다. 창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면, 현존 건물의 상당 부분은 철거되어야 한다. 하지만, 경복궁이 궁궐의 역할을 했던 것은 조선시대이고, 북궐도형을 비롯한 자료가 있어 당시 모습을 유추할 수 있기에, 조선 후기의 모습을 따라 복원되고 있다. 그래서 건축유산을 ‘복원’한다고 할 때의 기준은 ‘우리가 아는 가장 오래된 모습’이며, ‘아는’은 그 모습을 되살릴 수 있는 사진, 도면 등의 ‘근거자료가 있는’이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해당 유산이 ‘이러이러한 모습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고, 이러한 추정이 연구 등을 거쳐 객관성을 확보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추정은 신중해야 한다.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 복원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훼손시킨다.

복구는 해당 문화재를 구성했던 것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복구하는 것과 손상된 부분을 찾아 복구하는 ‘restoration’과 ‘anastylosis’로 구분된다. 서양건축 대부분은 돌, 벽돌로 쌓은 조적조(積阻造)인데, 이 경우 파손된 잔해는 주변에 있기 마련이다 . 즉 ‘기존재료를 재 사용하여 보수하는 것이 ‘anastylosis’다. 반면에 목조 건축은 목재가 썩을 경우 목재를 교체한다. ‘재료가 교체되는 데 문화재 가치가 유지되는가?’라는 서양의 관점에서 벗어나 목조 건축의 특성을 인정받은 것은 ‘진정성(authenticity)에 관한 국제회의(1994)’에서다.

숭례문은 두 관점이 공존한다. 문루는 화재로 손상되었으나, 절반 이상이 남았고, 자료가 있어 화재 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기에 ‘복구’라고 한 반면, 성곽은 오래 전 철거되어 재료가 없어졌기에 ‘복원’이라 하였다. 주변은 문화재에 어울리는 경관으로 ‘정비’하였다. 그래서 공사명칭이 ‘숭례문 복구 및 성곽 복원 정비’다.

 

문화재와 문화유산

 

문화재는 ‘문화’에 ‘재(財)’가 결합된 용어다. 일본에서 ‘Cultural Property’를 번역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치(value)’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문화유산은 ‘문화’에 ‘유산(有産)’이 결합되어 있다. ‘Cultural Heritage’로 표현되는데, ‘Heritage’에는 ‘물려받다’라는 ‘inherit’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즉, ‘문화유산’은 우리가 ‘물려받은’ 앞선 세대의 모든 ‘문화’이며, ‘문화재’는 그 중에서 우리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의 관점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석불은 종교 이념이 다른 단체에 의하여 2001년 파손되었다.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집트의 아부심벨사원은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뻔 했으나 이전공사를 통하여 살아남았다.

 

숭례문의 문화재적 가치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그 후 세종 30년(1448), 성종 10년(1479), 고종 연간에 큰 수리가 있었다.… 석축 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은 장식이 간결하고 내부 구조가 견실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2008년 2월 10일에 일어난 방화 사건으로 크게 훼손되어 2013년 4월까지 복구하였으며, 이 때 좌우 성곽도 함께 복원하였다.

이 짧은 안내문이 숭례문의 가치를 모두 표현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 사용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숭례문은 건립 연대가 밝혀진 서울의 건축 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서울이 600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조선 사람들이 지형과 방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려준다. 한양 도성은 500년간 한양 사람들의 시공을 지배하였고, 숭례문은 이 도성의 정문(正門)이다.

 

숭례문 복구를 통하여 제기된 전통의 문제

 

숭례문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문화재라는 법의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1호’라는 상징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래서 숭례문 복구는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강조되었고,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장인이 참여하였으며, 문화유산 보존 원칙에 따라 기존 재료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전통(傳統)의 기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숭례문은 조선 초에 건립되었고, 당시대의 특징이 남아 있다. 세종과 성종, 조선 중기와 고종 무렵에 수리되었으며, 그 흔적도 남아 있다. 하지만 도구와 사람은 수백 년 전 창건 때의 것이 아니다. 결국 복구의 기준점은 문화유산 보존 원칙과 개념을 고려할 때, 숭례문이 성문으로서 역할을 했던 조선 시대가 되었다.

‘기념물과 유적의 보존과 복원에 대한 국제헌장(1964)’9항, ‘ 어떠한 복원의 경우에도 기념물에 대한 고고학적, 역사학적 연구가 선행되거나 수반되어야 한다’에 따라 고증과 발굴이 진행되었으며, 거의 전 과정이 인력(人力)으로 추진되었다. 위의 헌장 10항, ‘전통 기법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기념물의 보존과 건설을 위해 현대적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과 11항, ‘ 기념물이 지닌 모든 시대적 특성은 존중 되어야 하며, 복원의 목적이 전체적인 양식의 통일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복구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 사실 관계에 따른 시대별 특성은 최대한 보존되었다. 자재 마감은 ‘질감’에 중점을 두었고, 기존 재료의 질감이 기준이 되었다. 기와는 제와장(製瓦匠)이 만든 전통기와를 사용하였다. 단청 안료는 전통재료를 기본으로 한 안료를 사용하였고, 숭례문이 조선 전기 건축임에 따라 당시 색조를 구현하였다. ‘전통’에 대해 고민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단청 안료였다. 조사결과, 조선시대 천연 안료는 중국, 일본에서 수입하였고 조선중기에 화학 반응을 통해 일부 안료를 제조했음을 알게 되었다. 연구를 시작할 때 ‘전통은 국산, 천연’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잘못이었다.

 

21세기에 더해진 가치

 

화재 전과 비교할 때 좌우 성곽이 덧붙여진 것과 단청 색조가 달라진 것을 제외하면 얼핏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5년 3개월에 걸친 무수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목재 하나, 돌 하나를 가공하면서 질감과 형태를 고민했던 3만 5천명의 고뇌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더해졌다. 숭례문 성곽은 도성 정문으로서의 가치를 더했고,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은 면밀한 검토를 통해 반영되었다.

1960년대 수리 당시 변형된 용마루를 고치고, 전통 기와로 지붕을 이었으며, 역사 흔적을 보존하였다. 문루 1층 마루는 일제강점기 때 장마루로 되어있었으나, 1960년대 수리 후 복원된 마루는 우물마루였다. 문헌 연구를 통하여 1728년의 승정원일기 기록에서 마루 형식이 변경되었음을 확인하였고, 일제강점기 사진 속 마루가 1728년에 변경된 것과 동일함을 확인하여, 이번 공사에서 이러한 변화 과정을 반영하였다. 발굴과 역사 자료를 근거로 동편 계단을 복원하였다. 발굴을 통해 확인된 조선시대 지반과 문헌 자료를 토대로 조선 중후기 지반 높이를 복원하였다. 또한 숭례문에서 헌괵례와 전좌를 거행하였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로써 우리에게 본래의 모습을 더 잘 보여주게 되었고, 숭례문의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이제 할 일은 숭례문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한 번 훼손된 유산의 가치는 되찾기 매우 어렵다. 무엇이 전통인가, 무엇을 지키고 버려야 할 것인가. 모두가 해야 할 가치(價値)있는 고민이다.

 

조 상 순 / 건축학 박사, 문화재청 학예연구사(숭례문복구 고증연구 담당)

 

그림 설명 및 출처

<그림 1> 지난 5월 4일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숭례문 복구 기념식이 열렸다. 이로써 5년 3개월 만에 국보 1호 문화재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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