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호 기획: 통화정책] 양적완화, 환율정책, 그리고 글로벌 과잉 유동성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럽의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길고 긴 세계 경기 침체를 야기하고 있다. 이에 금융위기 초기부터 주요 선진국은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침체를 완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언론 지상에 연일 등장하고 있는 양적완화, 글로벌 유동성확대, 환율전쟁과 같은 경제용어는 이러한 국제 경제 배경하의 통화정책이라는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양적완화 정책의 실상

 

먼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unconventional 또는 untraditional monetary policy)의 일환으로, 정책금리가 실질적인 제로(0) 금리 상태에 다다라 정상적인 금리 조정을 통한 통화정책의 여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중앙은행이 자산 매입을 통해 실물경기를 부양하려는 정책을 의미한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부터 실질적인 제로(0) 금리 상태에 다다른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선진국 중앙은행은 국채와 민간채권, 모기지 채권 등의 자산매입을 통해 금융권의 추가적인 부실을 막으면서 장기금리를 낮추어 실물경기 부양을 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양적완화가 처음 시행된 국가는 2000년대 초반 장기 불황을 겪으며 디플레이션하에 놓여 있던 일본이다. 2006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의장이 된 벤 버냉키(Ben S. Bernanke)는 이러한 일본을 보며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여‘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그 명성에 맞게 2008년말 미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져들자마자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하였다. 2008년 12월 시작된 제1차 양적완화(QE1)는 3,000억 달러 규모의 국채, 1조 2,500억 달러의 모기지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MBS) 매입, 2,000억 달러 규모의 공공기관채 매입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으며 2010년 3월 종료되었다. QE1 이후에도 미국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자 2010년 11월 QE2를 시작하여 2011년 상반기까지 총 6,000억 달러의 장기국채 매입을 하였으며, 다시 2012년 9월 QE3에서는 아예 경제 상황이 충분히 개선될 때까지 무기한으로(open ended) 매월 400억 달러 규모의 모기지증권을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총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 정책의 결과로 미국 연준의 자산은 이전에 비해 세 배 이상이나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적완화 정책이 미국 경제를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현재까지의 대답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의 탈출에 기여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초기의 미국 경제는 리만브라더스를 비롯한 대규모 금융 기관들의 연쇄 도산, 마이너스 성장, 높은 실업률, 디플레이션 등 총체적인 위기 국면이었으나, 초기부터 시행된 적극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 금융권이 안정되고, 빠른 시간 안에 마이너스 성장과 디플레이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된다. 금융위기 초기 10%에 육박하던 실업률은 2013년 현재 7.5% 수준까지 떨어졌으며, 2012년에 이어 2013년도 2% 내외의 경제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매우 건실한 회복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까지나 통화정책에 의존한 경제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대 거시 경제 이론이 지적하고 있듯이 거시 정책으로 인한 경기부양의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다. 양적완화의 철회와 금리 정상화를 의미하는 통화정책의 출구전략 이후에도 미국의 경제가 현재의 회복세를 이어나갈 수 있느냐가 향후 미국 경제를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지속되어온 장기불황에서 미처 벗어나기도 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길고 긴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는 20여년 이상의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본의 마지막 승부수라고 할 수 있으며, 그 핵심에는 2014년도부터 매월 13조엔 규모의 국채매입을 내용으로 하는 양적완화 정책이 있다. 사실상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은 아직 시행하지도 않았는데, 최근 언론의 집중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이 정책의 발표 이후 엔화가 급속히 약세 기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2012년 한 때 달러당 77엔 수준이었던 엔화는 2013년 5월 102엔 수준까지 20% 이상 평가절하되었다. 본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에 시장의 기대가 형성되어 환율절하 효과부터 발생한 것이다. 일본 당국은 자국 경제 사정으로 양적완화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환율부터 하락하고 보니 다른 나라에서 일본의 양적완화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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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궁핍화정책으로 인한 환율전쟁의 가능성

 

이렇듯 양적완화 정책은 경제 위기 국면에 빠진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 회생을 위해 펼치는 경제 정책의 일환이지만, 모든 국가들이 밀접한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는 현대 경제에서 한 나라의 거시 정책은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 나라의 확장적인 통화 정책은 환율의 평가절하(deprecation) 압력을 높이게 되고, 환율의 평가절하는 자국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확장적인 통화정책은 무역 관계에 있는 타국에 경제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근린궁핍화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이라 불린다. 따라서 양적완화를 실시하는 국가의 교역상대국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자국의 무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게 되며, 이러한 우려가 표명된 말이 이른바 ‘환율전쟁’이다. 양적완화를 실시하는 당사국은 자국의 내부적인 경기침체를 이유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교역 상대국의 입장에서는 환율 조작을 통해 무역상의 이익을 얻으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나라가 경쟁적으로 통화 완화를 통한 환율 절하 노력을 하는 환율전쟁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양적완화는 필연적으로 환율의 절하를 가져올까? 자국의 통화가 늘어나면 그 상대적 가치가 낮아져 환율이 절하되는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적완화 정책이 반드시 환율의 절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본원통화는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M2)은 크게 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늘어난 본원통화의 상당량은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 중앙은행에 예치된 상태이거나 금융기관의 자산 형태로 남아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유로지역 재정위기 등 타국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이 되어, 오히려 달러화가 평가절상되기도 하는 등, 세계적인 경제 위기 국면에서 환율 수준은 단순한 통화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점이 있다. 일본의 경우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기도 전에 환율부터 절하 되고 있는 모습이지만, 미국, 영국, 유로지역 등의 경우에는 양적완화 정책의 발표와 시행만으로 환율 절하가 이루어졌다는 일관적인 증거는 찾기 어렵다.

 

글로벌 과잉유동성 문제

 

선진국 양적완화 정책의 또 다른 결과는 글로벌 과잉유동성(global excess liquidity) 문제이다. 세계 경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규모 경제권의 통화 확대 노력이 신흥국의 자산시장과 상품시장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늘어난 유동성이 저금리 상태인 자국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금리와 성장률이 높은 신흥국 경제에 몰릴 경우 신흥국 자산시장이 과열되고 이를 통한 금융 불안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외국인 자본 유출입 변동성의 증가가 외환시장의 불안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확대된 글로벌 유동성이 상품시장에 투기적 유입이 될 경우, 유가와 곡물가 등 상품시장의 과열과 가격 변동성 심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수출+수입)/GDP)가 100% 수준에 이를 정도로 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자본시장 개방 수준이 높은 국가이기 때문에 양적완화와 글로벌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여건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양적완화와 글로벌 유동성 확대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는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의 엔화 약세 기조가 지속되면 대일본 무역수지 악화뿐만 아니라 일본 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나라 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다만 양적완화와 이에 따른 환율 문제, 국제 유동성 확대 문제 등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는 일차적으로 자국 경제 상황에 따른 정책이며, 이들 국가의 경제가 개선된다면 주요 교역 상대국인 우리나라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가 타국의 정책과 세계적인 금융불안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지만, 그 중 하나가 국제적인 발언권과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다. 지난 2010년 우리나라가 의장국 지위를 갖기도 했던 G20도 우리나라의 국제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창구이다. 세계 경제가 밀접하게 이어진 현대 경제에서는 어느 한 나라도 고립된 상태로 살아나갈 수는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지러워진 국제경제 질서를 회복하고 상생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정책 공조가 필요한 것이다.

 

이 동 은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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