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호 인터뷰] 미래는 통섭형 인재를 원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생태학회 부회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고,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통섭’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소개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단 학문적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통섭적 삶을 강조하는 최재천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연히 생태학의 길을 발견하다194-1-1

 

Q. 생태학을 어떻게 전공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까지의 학창시절은 큰 어려움 없이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 을 위해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희망했던 학과는 의예과였지 만, 결국 2지망이었던 서울대 동물학과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2지망으로 동 물학과를 지원한 기억이 없습니다. 당시에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임의로 적어서 제출하신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제가 원했던 학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다시 입시 공부를 하 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이미 재수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웃 지 못할 일이 벌어졌지만, 결국 동물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Q.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진학이라 대학 생활이 힘드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타의로 결정된 전공인 생태학을 지금까지 공부하게 되신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원치 않은 진학으로 인해 대학시절 초기에는 방황이 심했습니다. 전공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고, 그 대신 독서, 예술 동아리 등 외부 활동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던 중, 관심이 없던 전공분야에서 우연한 기회에 제가 원하던 삶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어느 날 한 외국 교수님의 조교 역할을 잠시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교수님은 현장에 직접 나가서 동물의 행태를 연구했는데 이는 제 적성과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당시 외국 교수님께“정확하게 당신과 같이 되고 싶다”라고 말하며 매달리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와의 생활을 모두 끊고 생물학과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뒤늦게 발견했지만, 뒤늦은 발견이 오히려더 공부에 열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죠.

 

 

통섭적인 삶과 그 가치

 

Q. 공식적으로 생태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지만, 저서나 강연의 내용을 보면, ‘통섭’, ‘ 융합’과 같은 단어들로 더 유명하신 듯합니다. 생태학을 전공하시면서 ‘통섭’이라는 가치에 관심을 두게 되신 것은 언제였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통섭적인 삶을 살아왔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과로 가서 시인이 되고 싶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의 방침 에 따라 강제로 이과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예과로 진학하지 못하고 동물학과로 진학하였습니다. 대학생활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미국 유학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다른 분야에 기웃거렸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크게 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이 변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해서 저같이 통섭적인 사람이 가치가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통섭이라는 단어는 저의 지도 교수님이었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교수님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개념이지만, 저는 이미 통섭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Q. 통섭형 인재, 통섭적 학문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어떤 경우를 들 수 있을까요?

 

통섭형 인재로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를 들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캠브리지대학교에서 막 생리학(Membrane Physiology)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UCLA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로 취임을 했습니다. 과거 그는 하버드대학 시절, 새를 관찰하는 모임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취미는 교수로 취임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바쁜 교수 생활 가운데서도, 휴가 때마다 뉴기니섬에 가서 새를 관찰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가 40대가 되었을 때, 뉴기니 섬의 새에 대해 그 사람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새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가 되었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취미생활로 새를 관찰한 것인데, 관심을 두고 접근하다보니 저절로 공부가 된 것이죠. 취미생활 덕분에 본인의 전공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경지에오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UCLA 의과대학 교수인 그에게 생태 및 진화생물학과 교수직 의뢰가 오는 상황이 발생했고, 두 분야에서 동시에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생태학계의 거물이 되었고,『 제3의 침팬지』등 진화와 관련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서를 다수 저술하였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와 생태 및 진화생물학과 교수 양쪽 모두를 그만 두고 지리학과에서 교수로 활동하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라는 유명한 책도 통섭적 생활이 없었다면 쓸 수 없었을 역작이죠.

 

 

현대사회에서 더욱 강조되는 독서의 중요성

 

Q. 교수님께서는 폭넓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요즘 일반 청년들뿐만 아니라, 대학원생들도 전공 분야 이외 독서에는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원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학부형들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세요”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하지만, 옛날부터 습관이 안 든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대학원생들은 전공에 따라서 실험이나 연구에 집중하는 데 바빠서 폭넓은 독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책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읽은 사람의 차이는 더욱 크게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책 읽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Q.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독서가 중요하다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가지 예시를 들어드리겠습니다. 현대 사회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약 100세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또한, 미래학자들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일생동안 다섯 번 정도 직장을 바꿀 것이라고 합니다. 정년을 60세까지 보장받았다고 하더라도 은퇴하고 3,40년의 인생을 더 살아야 합니다. 머지않은 시대에 더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옵니다. 이럴 때 독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자는 다른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 볼 줄 아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고 하지만, 다양한 책을 읽은 사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이와 반대로, 다양한 책을 읽지 않으면 눈앞으로 온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은 통섭적 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결국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를 하게 되면 눈앞에 찾아온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군요.

 

기회를 문으로 비유해 봅시다. 눈앞에‘나노과학’으로 들어가는 문이 조금 열려 있습니다. 현재는 주변에서 나노과학이 자주 거론되고 이슈화된 상황입니다. 나노과학에 대한 책 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조금 열린 문틈을 쳐다보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는데 그것을 기회라고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노과학에 대한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은 문틈을 살펴보고 주변을 기웃거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다가 문 안으로 들어가서 나노과학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독서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특히 책을 읽는 자와 읽지 않는 자의 차이는 고령사회에서는 매우 크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정년 후 여생이 40년 가까이 될 우리나라에서의 독서의 양은 삶의 질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책 읽는 것에 중요성을 느끼고 책을 읽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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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시간

 

Q. 저녁 시간대를 자신만의 시간으로 온전히 비워두시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바쁜 스케줄과 사회적 관계망 때문에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이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모임을 갖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결혼 후 아내가 지방에서 취직을 하게 되고 아이를 돌봐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녁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된 것이 계기입니다. 이제는 자녀들이 장성하여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집에 들어갈 일은 없지만, 습관이 들어서 저녁 시간에 집에 있게 되더군요. 그 시간에 책도 쓰고 논문도 쓰고 강의도 준비하다 보니 소중한 시간이 되었고, 지속적으로 그 시간을 지키게 됐습니다. 이러다 보니 지인들도 저의 생활 패턴을 알고, 저녁시간에 약속을 잘 잡지 않게 됐죠.

 

Q. 옛말에 ‘한 우물만 파라’라는 속담이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오히려“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학부생들은 비교적 넓은 범주에서 다양한 학습을 하고, 대학원생들은 보다 세부적으로 심화하여 학습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와 관련하여 공부를 하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깊이 파려면 넓게 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넓게 파면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좁고 깊게 파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대학원생들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공부를 하고 싶지만, 그럴 경우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쩌면 대학원생들에게‘통섭적 학문’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위험한 제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대학원생들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보다 폭넓고 통섭적인 공부를 한다면 노력한 시간만큼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습니다.

 

대담·정리 : 박운호 │ whpark@khu.ac.kr

사 진 : 한승원 │ aimar@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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