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호 인문학술] 한국사회의 감정노동 바로 알기

195-04-1

Ⓒblog.naver.com/hrdvital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호칭이 무엇일까? 아마도“고객님”일 것이다. 쇼핑을 할 때, 각종상담전화나 안내전화를 받을 때, 고장난 물건을 수리하러 A/S 센터를 방문할 때, 은행 업무를 볼 때, 구청이나 지하철역에서도 우리는‘고객님’이 된다. 심지어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는 TV 홈쇼핑에서도 우리는‘고객님’이다. 그렇게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고객님’이 되어 우리를‘고객님’으로 부르는 사람들로부터 극존칭을 들으며 왕 대접을 받는 사이 한국사회에서는 우리를‘고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감정노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이 한국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소개된 이후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파장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감정노동이 이루어지는 영역의 비중이 그만큼 커졌음을 반영한다. 감정노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산업 부문의 비중만 보더라도 서비스산업 종사자가 총 취업자의 약 70%에 이를 정도로 확대된 상태이다. 그중 절반 정도가 업무 중 감정노동을 수행한다고 보더라도 이미 총 취업자 중 35~40% 정도는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콜센터 전화상담원들은 물론 각종 판매 및 영업직, 간호사 등 대인 서비스 노동자, 심지어는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감정을‘판매’하는 직종은 매우 다양하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공공기관에서도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고 있고, 그 결과 이제 는 공무원들마저도 매뉴얼화된 감정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는 일하는 사람 모두가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는 형국이다. 더욱이 얼마 전 ‘라면 상무’나 ‘빵 회장’ 사건 등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감정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감정노동이란 무엇인가

감정노동은 말 그대로 노동에 감정을 투입해야 하는 노동행위를 뜻한다. 감정노동자들은 타인의 눈에 비치는 얼굴 표정이나 몸짓 등의 감정 표현을 정해진 감정법칙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관리하는 작업을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이라는 용어는 1983년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Hochschild)가 처음 사용하였다. 혹실드는 1983년『관리된마음(The Managed Heart)』(한국어판은『감정노동』으로 출간)에서 항공사 승무원들과 채권 추심원의 감정노동을 참여 관찰함으로써 개인의 일상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던 감정관리(emotional management)가 자본주의와 기업의 논리에 편입되어 노동의 한 요소로 치환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혹실드는 서비스 부문의 기업이 어떻게 피고용자들에게 특정감정법칙을 제시하면서 그에 걸맞은 감정을 표현할 것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표현하는지를 감시하고 통제하는가를 보여준다. 항공사 승무원과 채권 추심원은 모두 고객을 면대면(face-to-face)으로 대해야 하는 노동 상황에서 회사에서 요구하는 특정 감정법칙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해야 한다. 이렇게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행위는 상품 가치의 한 요소가 된다. 혹실드는 이러한 상황을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과는 구별되는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혹실드가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는 했지만, 감정노동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감정 관리는 기업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전부터 다양한 사 회적 관계 속에서 감정에 관한 사회적 규범에 맞추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해 왔다. 혹실드는 이러한 규범을 감정법칙(feeling rules)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감정법칙에 알맞게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존중하고 위로하기 위해 엄숙한 표정과 차분한 말투를 쓰거나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 등 사적인 관계에서 상황에 맞추어 특정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관리하는 것은 주로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감정노동 역시 그 시초는 보다 친밀감이 느껴지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다만 감정 관리가 자본주의의 틀 안으로 편입되고 불평등한관계 속에서 노동 행위를 하는 개인에게 감정적 부담이 지워질 때 이는 감정노동이 된다. 서비스 산업이 팽창하면서 각 기업은 서비스의 질과 차별성을 두고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웃음과 친절 같은 감정적 요소가 동원되었다. 개인의 의지에 따라 감정을 관리하고 표현하던 사람은 이제 기업이 요구하는 감정법칙에 맞추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고 표현해야 한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에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매겨지기 시작하면서 기업은 임금을 대가로 노동자의 감정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려 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 역시 자신이 지불하는 가격으로 감정 노동자의 친절을 사는 것처럼 인식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감정노동을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첫째, 업무 중 고객을 면대면으로 접촉하는가(일대일 통화 포함), 둘째, 본인의 감정을 조절하여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만들어내야 하는가, 셋째, 연수나 모니터링 등 고용주가 피고용자의 감정에 일정 수준의 통제력을 행사하는가.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합쳐져 노동자에게 감정적 부담으로 다가가는 경우 이를 감정노동이라고 부른다.

기업은 노동자에게 어떤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얼마 동안 유지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표현규칙(display rule)을 부과한다. 기업의 표현규칙은‘호감을 주는 인상’을 가진 사람, 기업에서 요구하는 감정 표현을 잘 할 사람을 충분히 추려내는 직원 선발 과정에서부터 피고용자들에게 충분히 주입된다. 또한 기업은 감정노동 행위가 지속되는 동안 수시로 이루어지는‘친절 교육’,‘ 고객서비스(customer service, CS)교육’등을 통해 기업이 원하는 표현규칙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교육하고, 감정노동자들이 고객 앞에서 부적절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도록 통제한다. 실제 어느 콜센터에는 개인 책상마다 거울이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고객의 어떠한 반응에도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도록 스스로의 표정을 모니터링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고객의 소리 같은 모니터링 제도나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않고 일반 손님으로 위장해서 서비스 상태를 평가하는 사람)등의 장치를 이용해 표현규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수시로 평가한다.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표현법칙을 습득하고 내면화하며,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자신에게 요구되는 표현규칙을 따라‘올바른’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감정노동자들의 노력은 크게 표면 행위(surface acting)와 내면 행위(deep acting)로 구분된다. 표면 행위와 내면 행위는 모두 표현규칙에 맞추어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표면 행위는 행위자가 내면에서부터 그 감정을 느끼지는 않더라도 표정, 몸짓 등을 조정하여 요구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일을 하고 있건 문이 열리면“안녕하십니까”혹은“어서 오십시오”라고 외치는 것이나, 고객과 눈을 맞추고 이가 드러나게 웃어야 한다는 등의 규칙들은 표면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다. 내면 행위는 표현하도록 요구받은 감정이 실제 마음속에 우러나도록 개인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노력이다. 내면 행위를 위해 개인은 기분 좋은 생각을 하는 등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바꾸거나, 고객을 내 집에 온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등 훈련된 상상력을 간접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혹실드의 감정노동 논의는 본격적으로 서비스산업사회로 전환되어 가던 당시 미국사회에서는 물론,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감정사회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으로 사회에서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감정노동 역시 더욱 심화되었고, 감정노동이 이루어지는 영역도 더욱 확대되었다. 혹실드의 연구는 여성의 감정노동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후의 많은 연구에서도 감정노동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주로 여성을 감정노동의 주체로 놓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여성이 감정노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종이 보다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전제가 작용한다. 그러나 혹실드도 지적했듯 남성 역시 내용 면에서 여성과 다를지언정 분명히 감정노동을 경험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서비스산업이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분야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오늘날 감정노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직종은 판매업, 콜센터, 음식•숙박업, 승무원이나 역무원, 병원의 간호사•간호조무사•간병인에서부터, 보험판매원•학습지 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의 특수고용직,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공 부문(공무원, 교사 등), 대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상당수 전문직 종사자들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그도 그럴 것이 감정노동은 면대면 상호작용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현대인들이 감정노동의 제공자로, 때로는 수혜자로 감정노동을 경험하는 상황은 수시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 무엇이 문제인가

일반적으로‘감정노동’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내밀한 속성인 감정마저 노동의 한 요소로 투입한다는 감정노동의 비인간적인 측면에 사람들이 갖게 되는 감정적 저항 때문이기도 하고,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주로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에 관심이 집중된 영향도 있다.

 

감정노동은 인간 본연의 속성인‘감정’을 작업과정에서 교환가치로 추상화하여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인의 감정은 표준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감정노동자는 자신의‘진정한 자아’라고 느끼는 것과 안팎의 행위 사이에서 소외를 느끼게 된다. 내면의 자아가 느끼는 진짜 자신의 감정과 외부로 드러나는 감정이 다른 경우 그 사람은 감정 부조화(emotive dissonance)를 경험하게 된다. 감정 부조화가 지속되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소외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마르크스의 지적대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구조에서 노동자의 소외는 육체노동자든 정신노동자든 경험하게 되는 폐해이지만, 감정노동자의소외는 노동의 산물인 서비스 상품뿐 아니라 자신의 본원적 감정과 그 표현으로부터의 소외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내상을 남긴다.

모니터링 등 고도의 직무감시 체제 속에서 직접적이고 반복적으로 부정적 감정과 감정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게 되면 정신적 고갈상태라고 할 수 있는 소진(burnout)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돼 얼굴은 웃지만 마음은 우울한 상태로 식욕, 성욕이 떨어지는‘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혹은 가면성 우울증을 겪거나, 대인기피증과 같은 후유증이 남는 경우도 다반사다. 감정노동을 견디지 못해 이직을 한 뒤에도 이미 심신이 손상을 입어 그 후유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사례가 있을 정도이다. 정신건강뿐 아니라 고객이 쇼핑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주변에 서 있어야 한다거나 앉아 있는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혀 응대해야 한다, 미소를 유지하거나 반복적인 인사말을 반복해야 한다는 등의 신체적인 표현규칙들을 지속하다 보면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건강 차원의 문제는 감정노동자 개인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주며, 삶의 질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

감정노동이 문제가 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다는 점이다. 감정노동은 최대한‘자연스러운’감정에가치를 부여하고 주로 즐거움과 편안함 등을 상품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부문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드러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에 비해 노동의 강도나 노동으로 인한 피로도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노동의 생산물을 소비하는 지점이 여가의 영역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타인의 노동을‘노는 일’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모두 사적인 차원에서 감정을 관리하는 데 익숙해져 있고, 소비자로서 상업화된 감정을 구매하는 일에 무뎌져 있다. 그렇다 보니 흔히 감정노동자의 친절과 웃음을 그 사람의 성격으로 치부해 버리거나,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니 당연하다고 여긴다. 상대적으로 서비스에 지불하는 비용이 높은 백화점 명품관이나 비행기1등석 등에서 오히려 고도의 감정노동이 이루어지는데도 그것이 당연히 여겨지고 무시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와 감정노동

 

한국사회에서 감정노동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주목을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1983년 처음 제시된 개념이 20여 년이 지나서야 한국사회에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 달라진 한국사회의 맥락과 관련이 있다. 2000년대 이전에도 한국사회에 서비스산업은 존재해 왔고 그 영역도 계속해서 확대되어 왔다. 그러던 중 한국사회는 1998년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 및 신자유주의적 기업 운영과 공기업 민영화 등이 진행되었고, 많은 기업에서 고객관리나 판매 등의 서비스 부문을 외주화하였다. 그에 따라 회사의 가장 전면에서 고객과 마주하는 대면 업무가 그 회사와 무관한 외주업체로 넘어가게 되었다. 고객에 대한 감사함이나 제품의 하자가 발생한 데 대한 미안함 등 기업에서 표현할 것을 요구하는 감정을 정작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서도 제3자(고용주)가 요구하는 매뉴얼에 따라 고객에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한 이들 감정노동자의 고용지위 역시 대체로 비정규직에 머물게 되면서 이들의 감정노동은 고용안정성 같은 보상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감정으로부터의 소외와 스트레스는더욱 심화되었다.

한국사회에 감정노동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이후,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신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감정노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급증한것은 한국사회의 감정노동이 그만큼 만연해 있기 때문이기도하고,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적 저항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감정노동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업군은 승무원일 것이다. 실제로 직업능력개발원에서 2013년 4월 발표한 <감정노동의 직업별 실태> 보고서를 봐도 항공기객실 승무원은 감정노동을 가장 많이 수행하는 대표적 직업군이다. 이와 함께 한국사회에서 감정노동자의 이미지는 마트 계산대에서 아픈 팔다리를 두드리는 중장년층 여성의 이미지도 중첩되어 있다. 그러나 감정노동이 많은 상위 30개 업종을살펴보면 알 수 있듯, 한국사회의 감정노동은 이미 특정 직업군에 한정되는 수준을 넘어섰다. 경찰, 치과 의사, 교사, 약사등 감정노동 논의에서 주로 다루어지지 않는 전문직종 종사자들도 상당 수준의 감정노동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택시, 버스및 대리기사, 경호원이나 주차요원 등 남성 종사자가 많은 분야에서의 감정노동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감정노동에 관한 연구와 실천은 서구 사회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사회의 감정노동 강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세다. 흔히 어느 나라 항공사를 이용해도 한국 항공사만큼 승무원이 친절한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존칭 중에도 격이 나뉠 정도로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고객님’과의 대화에는 그 주어가 고객님이든 사물이든 일단 높여 지칭하는 화법이 동원된다. 한국의 존칭 문화는 서비스의 질을 놓고 무한경쟁을 벌이는 기업의 풍토와 맞물려 과잉에 가까운 감정노동을 낳았다. 반면 정작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친절을 베푸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 보는 고객을 상대로 과도한 친절을 연기하고 고객에게 극존칭을 써가며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 기업의 표현 법칙에 감정노동자들은 매우 큰 감정적 저항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정노동, 건강한 내일은 있는가?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감정노동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국가적 개선의 노력은 201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감정노동자들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고 개선을 위한 권고사항을 모아 인권가이드를 만드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최근에는 국회에 감정노동자 보호법안이 발의되었고, 2013년 6월에는 처음으로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인한 한 전화상담원의 우울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기업 차원에서도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대형마트 계산원들이 손님이 뜸한 시간에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의자를 제공하기 시작하고,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소진을 예방하기 위한 자기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어느 카드회사에서는 전화 상담시 성희롱이나 폭언을 하는 고객이 있을 경우 두 차례 경고를 한 뒤 그치지 않으면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고 남성 전담 직원에게 연결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비정규직 신분인 판매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높여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모두 감정노동자 개개인을 보호하려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노동자 개인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유독 지나친 감정노동을 요하는 한국사회에서‘갑의 횡포’가 극심하고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현 상황에서는 과열된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서비스 업계의 거품 자체를 없애는 일 역시 필요한 부분이다.아울러 감정노동자가 노동에 주로 투입해야 하는 요소가 감정이니만큼, 감정적 차원에서의 보상과 친절의 맞교환이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 역시 감정노동자들의 애환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195-04-2


 이가람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 그림설명 및 출처

– 그림1: 감정노동을 많이 수행하는 직업 30선 (출처: 직업능력개발원 “감정노동의 직업별 실태” KRIVET Issue Brief 26호. 2013년 4월 30일)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