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호 기획] 한국의 안전문화

 

올 여름 노량진 상수도 건설현장에서 7명의 근로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여 우리 사회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사고들은 국민의 안전의식과 그 의식의 산물인 안전문화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의 산업사회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안전문화와 선진국의 상황, 우리의 안전문화 조성을 위한 방안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안전문화보다 예방문화

안전문화(Safety culture)라는 용어는 1986년 구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측의 사고조사보고서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보고서에서는 보다 나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그 수단으로써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문화’라는 단어는 매우 포괄적이어서 언어로서의 기능이 제한적이다.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방’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인간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 이외의 현상이나 존재를 알 수 없다. 문학적인 시가 아니라면 하나의 단어는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구체적이고 특정한 의미가 연상되게 하여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안전문화’라는 용어는 다소 모호한 측면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산업안전 분야는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사회보장협회(ISSA)를 중심으로 ‘예방문화(Prevention culture)’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한국이 분과위 의장국으로 되어있는 ISSA 예방문화 분과위원회가 전 세계 산업현장의 예방문화 조성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예방문화’라는 용어는 ‘어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사고를 예측하여 개연성이 있는 위험들을 찾아 사고발생 전에 처리하는 것[예방]이 다른 사람이 지시하거나, 자신이 고민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문화]’라고 정리하면 될 것이다.

 

사후확증편향(Hindsight bias)

예방문화를 우리 사회에 보편적인 문화로 조성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현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운동경기를 포함해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의 결과를 알고 나면 그 결과를 바꿀 수 있었던 요소를 쉽게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수비가 상대 진영으로 들어가지 말고, 상대의 공격 전에 수비 위치로 돌아와서 대인 방어를 했어야지!”라는 이 얘기만 들어도 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의 대다수 사고 역시 그 자초지종을 알고나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무엇이 달라져야 했는지 쉽고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사건 발생 전에도 자신은 그 사건이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아는 듯이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사후확증편향’이라 하고, 상황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Baruch Fischoff는 조사를 통해 일반인의 84.6%가 이런 편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실질적으로 어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예측해서 예방조치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또 사후확증편향과 언론의 토끼몰이에 따라 관계자 처벌은 이루어지고 있으나 재발방지를 위한 체계적 접근은 매우 부족해서 ‘사고-관계자 처벌-망각’과 같은 우매한 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실정이다.

 

195-03-1

 

 

안전선진국과 한국

ILO 생산통계 중 국가의 산업안전(위험)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는 근로자 10만인 당 사망자 수에 대한 비율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망십만인율은 영국의 19.4배, 독일•일본의 4배, 미국의 2.8배 수준이다. 다소간의 통계방식에 따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 GDP 세계 15위, GNI 23,000$인 것에 비하여 매우 뒤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격차의 주요 원인은 첫째, 사회의식 수준의 차이다. ‘안전’이라는 요소가 돈, 건강, 외모와 같이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욕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위험이 인지될 때만 발현되는 욕구이므로 예방은 사회시스템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영국의 경우, 2007년에 ‘기업 살인법’이라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의 함의는 생산과정에서 방치된 위험에 의해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해당 기업을 살인죄로 기소하는, 즉 산업현장의 사망사고를 우리나라 형법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정도의 범죄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볼 때 사업주의 의도적 폭행에 의한 사망이나 방치된 위험에 의한 사망이나 같은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선진사회의 공통점은 ‘사람이 위중한 상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을 방치하려면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인간존중을 우선하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둘째, 문화지체현상이다. 선진문명사회에서 후발사회로 기술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편익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예를 들어 안전, 인권, 환경 등과 같은 내용은 지체현상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2010년에 독일의 아우디자동차 공장을 견학하던 중 겪었던 일화를 예로 들자면, 우리나라에서 잘 보지 못한 이중 안전조치에 대해 안내를 하던 공장 직원에게 “너희는 항상 어디에나 이와 같은 안전조치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때 그 직원이 “무슨 안전조치?”라고 반문했었는데, 이를 통해 과거에 우리가 선진 생산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안전기술을 다수 누락시켰던 원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안전을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절차를 빠뜨리고, 우리는 생산중심 관점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누락과 지체가 발생된 것이다.

 

예방문화가 보편적 문화가 되려면

이 세상에 ‘절대’적인 수치는 관념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안전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에 대한 문제에서도 절대 안전이 희망이기는 하나, 현실적 목표는 될 수 없다. 우리의 경제수준에 부합하는 비교우위 정도가 현실적 목표로써 타당할 것이며, 이를 위해 몇가지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방향성이 명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가 사업주의 안전조치 부족으로 사망한 경우 대부분 몇 백만 원 수준의 벌금으로 형사사건을 종결한다.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구조물 외부에 설치해 추락을 방지하는 안전난간과 같은 안전시설 설치비용은 공사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대개 수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사고가 항상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발생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은 상황에서 수백만 원에 불과한 벌금은 그 법의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못한 채 무늬만 갖추어 놓은 꼴에 불과하다.

둘째, 시스템적 접근이다.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걸출한 영웅 여럿보다 잘 갖춰진 시스템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특징들 가운데 ‘자가진단-환류-진보’라는 자가발전 속성 때문에 시스템이 정상적인 가동만 되면 계속 발전한다. 따라서 금년 5월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시 반영된 위험성평가(시스템안전기법)제도가 우리나라 산업현장에 잘 확산되어 정착해야 하며, 그것이 곧 예방문화 사회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마지막으로, 활성화된 안전시장이다. 개인과 조직 모두 자신의 결함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기에는 관점과 익숙함 등의 문제들로 인해 쉽지가 않다. 각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시스템은 당해 기업에서 운영하지만, 그 시스템의 적정성, 효율성, 문제점의 발굴과 개선의 주도는 감사와 그 기능이 유사하다. 따라서 건설공사에서의 감리기능과 같이 Third party inspection과 컨설팅을 담당하는 안전시장이 크게 활성화되어서 산업안전에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측면으로 본다면 안전문제보다 더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방향이기도 하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제18차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안전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며 사회 각 주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라는 안전헌장이 최초로 채택되어 선포되었다. 이제 안전은 나와 내 회사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와 후손들에게 어떤 사회를 남겨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진중하고 성의 있는 우리들의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고재철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강원지도원장

* 그림설명 및 출처

– 그림1: 2013년 7월 30일에 일어난 방화대교 상판 도괴 사건 현장 모습이다. (출처: www.ohmynews.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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