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호 기획 : 집단지성] 집단지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집단지성의 개념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집단지성이 전문가나 지식인의 지식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관점으로 논의되어 온 이 시점에서, 집단지성 개념이 함축하는 의미와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집단지성을 마치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도구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것도, 공무원들이 더 자기희생적이고 합리적이 되는 것도, 기업이 더 효율적이고 혁신적이 되는 것도, 학생들이 더 창의적이 되는 것도 모두 집단지성을 이용하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처럼 집단지성이 경쟁사회의 사람들을 옥죄기 위한 그럴듯한 말로 전락한 상황에서 집단지성 개념이 함축하는 의미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96-03-1

▲집단지성이 발현되려면 모든 참가자의 의견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

집단지성의 개념

 집단지성이 수사적 표현이 된 이유는 바로 지성이란 단어 때문이다. ‘지성인’이란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지성은 앎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이다.
하지만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에서 intelligence는 지능이란 의미이다. 개인들이 가진 지능들과는 구별되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집단이 가진 지능이 집단지성이다. 개미사회를 예로 든다면, 개미들 하나하나의 지능은 낮은 수준이지만 집단으로서의 개미사회는 높은 지능을 갖춘 개체처럼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집단지성이란 개념이 처음 거론된 것은 개미와 같이 집단생활을 하는 곤충들을 연구하면서이다. 20세기 초 곤충학자들은 집단생활을 하는 곤충들의 사회가 개별 인자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정교하고 효율적인 체계를 유지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집단을 지능을 가진 거대한 유기체로 보기 시작했다.
이런 시각은 뒤르켕(Durkheim)과 같은 초기 사회학자들에 의해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데도 적용됐다. 즉, 개인이 현실에서 만들어내는 순수하게 개인적 지식과 다양한 사회적 제도와 기구들을 통해 드러나는 집단적 지식을 구분하고, 사회를 개인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적인 현실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곤충학자들과 초기 사회학자들은 집단지성을 사회의 필수적인 기본요소로 봤다.
이와 달리 최근에 집단지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집단지성을 좀 더 특수하고 도구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이들은 집단지성을 사회가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이들은 집단지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터넷 디지털미디어의 등장에 열광하면서 집단지성을 더 효율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도구로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미디어와 집단지성

 1994년 프랑스 철학자 레비(Levy)는 집단지성 개념을 인터넷과 연결해 제시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가치 있는 지식들이 상호인정을 바탕으로 인터넷미디어를 통해 연결돼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집단지성이라고 본다. 서로위키(Surowieki)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일반인들이 집단으로 내린 판단이 전문가 개인의 판단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면서 문제해결수단으로서 집단지성을 높이 평가한다. 문제해결수단인 집단지성은 디지털미디어를 만나 본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리드비터(Leadbeater)는 집단지성을 “웹이 창조한 집단적 사고방식과 집단적 놀이방식, 집단적 작업방식, 집단적 혁신방식”이라고 정의하면서 디지털미디어가 집단지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명시한다. 그리고 웹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집단지성을 구현하는 것은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로 만든다고 믿는다. 탭스코트와 윌리엄스(Tapscott & Williams)는 인터넷 소셜 네트워킹이 사람들 사이의 ‘대규모 협업(mass collaboration)’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비즈니스 전 영역에 걸쳐 위키노믹스(wikinomics)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제해결 시스템을 만들어낸다고 판단한다.
이처럼 디지털미디어와 사람들의 자율적 참여라는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집단지성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집단지성은 초기 사회학자들이 생각했듯이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것이 된다. 이제 집단지성은 디지털미디어를 이용해 구현되는 것으로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도구로 이해된다.
디지털미디어와 연결된 집단지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철저히 기술결정론에 의해 채색돼 있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의 탄생이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이끈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변화는 우선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들은 사람들을 네트워크로 연결시키고 가상공간에서 자유로운 상호작용과 협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디지털미디어와 집단지성이 개인이나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집단지성과 권력

 문제는 집단지성이 디지털미디어를 통해 자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집단지성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우선 디지털미디어는 정치적, 사회적 요인에 종속돼 있다. 정부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와 같은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일상적 수준에서, 또는 ‘미네르바’ 사건과 같이 구속, 재판 등을 통해 강제적 수준에서 인터넷 활동을 억압하고 위축시킬 수 있으며 국정원 댓글 사건처럼 아예 조작을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디지털미디어를 문제해결수단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오락이나 인간관계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디지털미디어가 이성적인 방식보다는 감성적인 방식으로 더 많이 이용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디지털미디어를 통한 상호작용은 아무리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하더라도 결국 정치적, 사회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집단지성이 도구가 아니라 결과라는 것이다. 집단지성을 도구로 보면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인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전문가와 대중을 나누고 전문가지성이 더 뛰어난가, 대중지성이 더 뛰어난가란 식의 논의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단지성 자체가 개인들을 모두 동등한 참여자로 간주할 때 도출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집단지성 안에서 전문가와 일반인을 나누고 전문가지성과 대중지성을 구분하는 것은 집단지성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집단지성은 전문가지성도 아니고 대중지성도 아니다. 집단지성의 형성 과정에서는 전문가와 대중을 구분할 수 없다. 집단지성이 발현되려면 모든 참가자의 의견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 전문가의 권위가 드러날 경우, 정보의 자유롭고 동등한 교환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대중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참가자들 사이에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할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의 불평등한 분할은 집단지성의 발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만약 전문가와 일반인이 구분되고 그에 따라 각각의 참가자들에게 다른 권력이 부여되고 행사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결국 권력이 많은 사람들이 정보교환을 주도하고 지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미디어의 이용 자체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권력의 불평등한 분할이 강제된 상황에서 집단지성은 발현되지 않는다. 집단지성을 이용해 더 좋은 결과를 얻겠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특정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편향된 목적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단지성이 도구로 간주되는 한, 구조적으로 집단지성은 발현될 수 없다. 집단지성의 구현물이라는 찬사를 받는 ‘위키피디아’도 편집방침 때문에 사실은 기존 지식의 영혼 없는 요약에 불과한 실정이다.

집단지성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활용돼야 하는 도구가 아니다. 집단지성은 사회 구성원들이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정되고 각자의 의견이 동등한 힘을 가진 것으로 수용될 때 비로소 발현되는 결과이다. 그것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가 되면 우리가 접하게 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위계에 따른 지배와 착취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집단지성을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것은 우리가 단지 도구적 합리성에 지배당한 채 생존을 강요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미디어와 집단지성 덕분에 자유롭고 열린 민주 사회가 되는 게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낼 수 있는 사회가 됐을 때 집단지성이 꽃피는 것이다.

 

주형일 / 영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 그림설명 및 출처

– 그림1: 집단지성이 발현되려면 모든 참가자의 의견이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 (출처:www.shnti.com.br/Produtos.aspx)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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