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호 인터뷰] 절망(絶望)의 인문학, 절망(切望)의 인문학 – 중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오창은

인터뷰   중앙대학교 교양학부 오창은 교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여전히 유의미한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시민교양강좌와 인문강좌가 개설되고, 이는 이미 하나의 문화코드처럼 번지고 있다.  신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상처를 성찰하는 책과 강좌들이 쏟아지지만, 놀라운 것은 이들 역시 ‘매혹적’이고 그럴듯한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문학 위기의 모순 속에서 현재 인문학이 어떤 의미구조망 위에 놓여 있는지를 냉정히 살펴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지난 9월 25일, 최근 <절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내놓으며 활발히 인문학 내적 성찰의 목소리를 끌어 올리고 있는 중앙대 교양학부 오창은 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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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와 희망의 인문학

Q. 최근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하여 <절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출간하셨는데요, 집필하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2000년대 초반 저를 비롯한 인문,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중심이 되어 『모색』이라는 무크지를 만들면서 경험하고 논의했던 질문들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사회의 학문생산과정에 대한 질문들, 어떤 학문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들에서 시작한 것이었죠. 언론에서는 센세이셔널한 부분들을 크게 다루다보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원생들의 반란, 이런 식으로 크게 다뤄졌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현재적 관점 속에서 다시 써낸 결과물입니다. 결국 현재 인문학의 위기는 자율적으로 인문학적 사유를 재생산해내지 못하는 것에서 파생되는 위기입니다. 이 재생산의 위기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를 따져 보니 몇 가지 테마들이 나오게 되었죠. 대학원 내부의 문제들, 한국학문의 자생성과 관련하여 해외유학이나 번역의 문제들, 한국연구재단 등과 같은 제도적 측면에 이르기까지의 문제들을 다뤘습니다.

Q. 왜 절망의 인문학인가요?
제가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인문학 중독(重讀)’이었습니다. 인문학이란 끊임없는 다시 읽기라는 의미에서였죠. 계속 다시 읽으면서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제목이었습니다. 해당 출판사에서 인문학 시리즈를 계속 내고 있는데, 『희망의 인문학』, 『행복한 인문학』이 나왔죠. 『절망의 인문학』이란 제목은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겁니다. 출판사에서 훨씬 더 선호한 제목이었죠. 물론 중의적인 표현으로 쓴 제목입니다. 이 절망(切望)이라는 건 ‘간절하게 희망한다’는 의미입니다. 희망 없음의 절망(絶望)과 음은 같지만 다른 한자를 썼죠. 현상적으로는 대단히 암울하지만, 인문학자로서 제가 꿈꿀 수 있는 절절한 소망을 담은 표현입니다.

인문학 붐의 열기, 즐길 수만은 없는 향연

Q. 여전히 인문학의 위기가 심각하게 회자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시민강좌, 인문학관련 콘텐츠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는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적 실천을 위해 노숙인을 만나서 대화하고, 저도 참여했던 실천인문학 강좌처럼 교도소 수용자들과 세미나를 하는 등 일련의 활동을 해왔던 것과 관련돼 있습니다. 그 성과들을 제도가 흡수해서 만들어진 게 인문주간이죠. 한국연구재단에서 인문주간을 설정해서 이벤트화하면서 인문학이 대중 속에서 호응을 얻고 증폭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겁니다. 물론 이는 대중들의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인문학은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기 결정권을 갖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으려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나아가 더 포용적이고 관용적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 귀 기울이며 열린 자세로 토론할 수 있는 태도와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점이 어찌보면 한국사회에서 경제적 성취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갈구하는 부분이에요. 모든 걸 희생하면서 경제적 성취를 얻었는데 그 이후에 오는 공허감을 어떻게 채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대학 밖에서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장이 형성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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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중들의 인문학에 대한 수요를 꼭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조금 민감한 지점이 있습니다. 자기계발이 교묘하게 틀어져버린 경우인데, 예를 들면 ’20대에는 뭐 해야 되고, 30대에는 뭐 해야 되고’하는 식의 자기계발의 영역에서 인문학이 작동하고 있는 미묘한 중첩지대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지금은 명료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죠. 자기계발이라는 것이 사회적 성공 내지는 경쟁적인 인간에 대한 고민이라면 인문학은 좀더 자기 내적 힘을 가진 인간에 대한 고민입니다. 훨씬 더 자율적인 인간, 제도마저도 객관화할 수 있는, 주체로서 사고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죠. 자기계발의 맥락 속에서 인문학을 보는 것에 대해 저는 매우 비판적으로 봅니다. 지금은 자기계발의 연장으로서 인문학을 강의하고, 소비하고 있는 흐름과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가 대해 고민하고 있는 흐름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그 대립이 가시화되어 나타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상당히 중요한 대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Q. 자기계발식으로 인문학이 활용되는 흐름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분들의 역량이 굉장히 커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강의만 들으려 하지 말고 자율적으로 찾아서 읽고, 또 같이 읽고 토론하라고 강조합니다. 강의를 들어서 인문학적인 어떤 것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제자 관계로 대표되는 교육관계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전이 됐든, 현대의 쟁점이 됐든 비판적인 서적을 커뮤니티 속에서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읽고 토론하는 관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이런 단계가 온다면, 대단히 중요한 질적 변화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워낙 소비중심적이고 중앙집중적인 사회에서 인문학의 문제의식들이 제기되기 위해서는 이런 태도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처한 위기

Q.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인문학의 대중화가 갖는 의미나 한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인문학을 대중적으로 향유하는 것과 인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인문학이 대중적으로 많이 향유된다고 해서, 인문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이 돌파되지는 않습니다. 이건 정말 별개의 문제예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대학사회에 주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 밖의 체계들에 자율적인 힘들이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아직까지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인큐베이팅해야 하는데, 좀 답답하죠. 현재 대학의 인문학은 변화될 여지도 없이 막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어요. 학과통폐합의 문제라든지, 자본의 산출가능성이나 평가시스템 등을 둘러싼 실용주의적 측면들의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인문학이 많이 향유되는 건 좋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한정된 자원에 대한 급격한 소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문학적 사유나 통찰, 보다 더 진전된 논의를 계속 생산해낼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이 토대가 붕괴되고 있는 겁니다.

Q.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지닌 재생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인문학의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사유를 재생산해내기 위해서는 번역에 대한 태도의 문제가 중요해집니다. 학문적인 국적이 없는 사유들을 어떻게 한국어로, 우리 가 갖고 있는 문제설정 속에서 체계화시킬 것인가하는 고민이 번역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번역 문화는 한국학문 언어를 풍부하게 하고, 한국학문의 부족한 점들을 보충하며 의미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현재 한국학문시스템은 번역을 너무 간과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번역인 경우가 많고, 중요한 학문적 성과로도 인정해주지 않는 실정이죠. 번역어의 변천과정들을 추적한다든지, 번역어 사전이나 개념어 사전의 편찬, 이런 노력들이 뒷받침되어야만 체계적인 번역이 이뤄질 수 있고, 해외에 의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한국학문을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Q. 현재 인문학의 위기를 정책적인 지원의 측면에서 진단해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도 언급한 한국연구재단의 프로젝트로 시도되고 있는 번역어 사전, 개념어 사전 편찬 등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국가가 학문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학문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짚은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 정치적 의도에 따라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서 지역화연구를 활성화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게 해외시장활성화를 위한 연구라면 맥락이 달라진다는 거죠. 애시당초 의도성이 개입된 채 이루어지는 정책적인 지원은 그 성과도 왜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문의 폭을 협소화시키고, 다룰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해버리기 때문이죠. 거의 10여년 되는 사이에 인문사회과학은 한국연구재단이 사실상 지배하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질서를 형상화시켰죠. 그런데 과연 15년 전에도 그랬는가 물으면 아마 아닐 겁니다. 여러가지 가능성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가능성 중 국가기구의 대리인으로서 한국연구재단이 질서를 만들어 놓은 거죠. 빈익빈부익부, 학문세계의 서열화, 계열화는 거의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고, 경쟁력 있는 학문만 살아남을 수 있는 토대가 뿌리내리게 됐죠. 이를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작업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질서를 해체해보고, 다른 질서가 만약 가능하다면 뭘 상상할 수 있을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것이죠.

Q.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통섭이나 통합이 해결책으로 쉽게 제시되는 경우가 많은 데요, 한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세부직능화되면서 나타나는 소외현상에 대해,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관점은 인문학적 문제설정에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든 세부적인 발견이나 통찰을 전체적인 문제들과 연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학문적인 역할이죠.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새로운 융합이나 복합적인 성과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느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과학적,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통찰이라 하더라도 자본에 포섭되면 현재의 질서 속에서 자본에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전유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태도의 문제가 중요시됩니다. 인문학적 훈련, 사유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입장을 갖도록 하는 문제의식이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인문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되겠죠.

‘배운다’에서 ‘생산한다’로의 전환, 제도 밖의 산책자

Q.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힘들게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을 위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학과 수업에만 함몰되지 말고 제도 외적으로 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야 합니다. 학과는 그냥 정규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동학들을 만들기를 권합니다. 자율적으로 같이 공부할 수 있는 학문적 동료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역량이 된다면 전혀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율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제도 밖의 산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도를 배제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보다는 동료들과 더불어서 다른 가능성들을 실험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가급적 ‘배운다’가 아니라 ‘생산한다’라는,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입장으로 가급적 빨리 전환이 돼야 합니다. 아마추어적이고 서툴더라도 배워서 나중에 뭘 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끊임없이 생산하면서 검증받겠다는 태도가 중요하죠. 읽고 사색하는 차원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현해보고, 책도 간행해보고, 어디에 발표도 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스스로 학생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학문연구자라는 자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학문후속세대라는 생각을 갖고, 좀 더 도전적으로 얘기하면, ‘미래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생산을 하는 거죠.

 

대담 · 정리: 이철주 | vertigo1985@khu.ac.kr

                                                                                                                                                                                                                                                         사            진: 김내영 | myjq180@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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