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호 인터뷰] 국내 미술계, 풍요로운 담론(談論)을 그리다-<문화역서울284> 김노암 예술감독

김노암 예술감독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와 미학을 전공하고 다수의 미술 전시를 기획한 미술기획자다. 1998년 처음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입문한 이래,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비영리 전시기관인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휴>를 다년간 운영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문화역서울284>에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그동 안 그가 미술 현장 근저에서 직접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미술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야기해 보고, 앞으로 우리 미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서도 조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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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는 예술기획자

Q. 작품 활동을 하시다가 1998년 처음 큐레이터로 입문해 지금까지 예술기획자로 활동 중이신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때 회화를 전공했고 촌스럽지만 그 당시 저는 ‘한국의 피카소’가 돼야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죠. 경쟁력 있는, 좋은 작업이 하고 싶어 인문학적 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학 전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상업 화랑에 취직을 했습니다. 갤러리 업무에 환멸을 느끼던 무렵, <네오룩> 운영자인 최금수 대표의 제안으로 <프린지페스티벌>의 기획을 맡게 됐고, 신예 미술가를 발굴하겠 다는 취지로 현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전시기획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작업은 지금도 남몰래 하는 중입니다. 작업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Q. 오랫동안 대안공간을 운영해 오신 줄 압니다. 일반적으로는 대안공간에 대한 개념 정립이 부족한 상황인데 이곳이 어떤 곳인지, 또한 출범 이후 국내 미술계엔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 싶습니다.

 대안공간은 젊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1999년 처음 출범했습니다. 당시 제가 <아트스페이스 휴>라는 대안공간을 열었고, <루프>, <인사미술공간>, <풀> 등 많은 대안공간이 생겼죠. 현재는 이러한 작가들이 안정적인 창작활동을지속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을 더욱 넓게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대안공간은 시대마다 어떤 담론이 필요한가를 모색하여 시대적 이슈, 비평적 담론을 제시합니다. 민간 단위의 인프라와 공공 단위의 인프라 사이의 매개 장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국공립 미술관 급의 프로 그램을 구축하고 있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안공간이 우리 미술 문화에서 이루어 낸 일종의 성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Q. 올해 초 <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셨는데 아무래도 국공립 기관이다보니 과거 대안공간에서의 전시 기획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안공간의 경우, 전시 기획 측면에서 전략적 액션을 취하기가 용이한 반면에 국공립 미술관은 시스템과 룰에 의해 움직이며 안정성을 추구합니다. 표면적으로 미술관은 일반 시민들의 문화 의식과 미술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문화역서울284>는 주변에 중·대형급 미술관이 매우 많은 편이라 그곳에서 선보이는 전시 기획과는 차별화하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문화역서울284>만의 특색을 잘 나타내면서도 시민들의 미적 인식을 일 깨우고, 애정과 관심을 이끌어낼 것인가가 현재의 과제입니다.

Q. 그렇다면 대안공간과 같은 비영리 공간에서 국공립형 기관으로 활동 영역을 전향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을까요?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홍대 앞에 위치한 <상상마당>에 서도 전시감독 겸 설립운영위원으로 있었습니다. 당시 <상상 마당>이 표방하던 모델이 ‘복합문화공간’이었고, 그곳에서 제가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안팎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편이라 그 이후로 저는 ‘복합문화’, ‘복합공간’과 같이 가는 사이가 되었죠. <문화역서울284>에서도 그러한 이력을 바탕으로 업무를 맡게 된 것 같습니다.

 

국내 미술계의 현 주소 – 불안한 미술계

Q. 최근 몇 년간의 미술계는 ‘불황이다’, ‘침체기다’라는 평가가 전반적입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예술기획자로서 어 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불황’이라는 말은 경제용어입니다. 호황과 호황사이가 불황, 불황과 불황사이가 호황이죠. 마치 빙하기처럼 불황과 호황이 오가는데, 현재는 호황의 기간이 예전보다 짧아졌기 때문에 불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미술계의 불황은 사실 중요한 이슈가 아닙니다. 그리고 불황 이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위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죠. 그런데도 불황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이유는 경제와 미술의 영역이 융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미술을 둘러싼 문화와 담론의 위기라고 해야 합니다.예술이란 본래 우리 삶 깊숙이 침투돼 온 것인데, 그 삶을 둘러싼 담론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죠.

Q. 최근 발간하신 저서를 살펴보면 국내 미술계의 고질적 문제점(미술이 시장의 요구에 의해 생산·소비되는 구조, 열악한 창작·업무 환경, 전문 인프라 부족, 자금부족 등)에 대해 요목조목 짚고 계신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가시화 되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일 큰 문제는 미술시장이 미술계 전체라고 생각하는 인식 입니다. 90년대 중후반 처음 등장해 생소 하게 느껴졌던 ‘아트 마케팅’, ‘관객 개발’ 등과 같은 용어도 이제는 필수가 됐죠. 결국 예술의 영역에 경제적 조건들이 서서히 침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현재 우리는 물질적 가치와 인식이 매우 중요한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제 미술이 앞으로 어떤 인식과 의미를 확보하고 전달하며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것이 제일 큰 과제일 것입니다.

Q.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예술·문화계에서 정부의 영향력은 꽤 큰 편입니다. 문민정부시절부터 공공미술의 영향력이 컸고요. 그 이후론 공공디자인, 공공건축으로 이어졌습니다. 가급적이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존의 인프라를 흔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술 분야는 바꾸면 바꿀수록 악순환에 봉착하기 쉽습니다. 환경이 변하고 유형·무형의 인프라가 변한다해서 오랜 기간 숙련해 온 소중한 것들을 폐기할 수는 없습니다. 정책 자체는 미래지향적이고 진보적으로 짜더라도 행사는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특히 요즘은 다른 영역과의 융합, 복합적 형태로서 서로 협업해 결과물을 나타내거나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습니 다.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지 계속 찾다보면 피로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피로 해지면 환기를 해야겠죠. 현재는 융복합을 내세워 장르와 장르를 허물고 있는 추세인데, 앞으로도 융복합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것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면 아마도 더 철저하고 정확한 장르와 규범, 형식 등이 개발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도 기존의 장르화와는 별개로 현 상황을 발전시킨 양상의 새로운 장르화로 나타나겠죠.

Q. 최근 선생님께서 주목하고 계신 미술계의 주요 동향(키워드)은 무엇입니까? 더불어 앞으로 국내 미술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도 알고 싶습니다.

근래 국내 미술계에 대형국제전시가 우후죽순 늘어난 현상 을 두고 흔히 ‘비엔날레 공화국’이라고들 표현합니다. 이제는 비엔날레 이후가 무엇인지를 내다보는 것이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비엔날레의 부작용과 문화적 파급력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것은 그만큼 사회적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시대마다 미술계가 주목하는 동향은 항상 존재해 왔죠. 이 변화의 배경엔우리 세대의 관심사와 사회적 이슈가 중심에 있습니다. 그만큼 개별자들은 사회 현상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창의적 욕망을 구현하고, 성취해야 합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나라는 문화· 예술·복지 관련 인프라가 최근 급성장한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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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건강한 미술, ‘젊은 미술’

 Q. 평소 언급하시는 ‘젊은 미술’에 대한 정의가 인상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사고를 치는 정신’입니다. 늙은 정신은 사고를 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 역시 사고를 칠 수없다고생각해요. 영혼이 가난하고 욕망이 강해야 사고를 칠 수 있죠. ‘젊은 예술’이라는 것은 결핍된 것을 충족하기 위해 집중하고, 몰입 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조건이나 기성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의 프레임을 구축해 가는 것입니다. 신체의 연령과는 상관없이 작품과 활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활력을 주었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Q. 젊은 예술가 육성을 위한 나름의 예술 정책(레지던시 residency, 기금 지원, 공모전 등)이 마련돼 있고, 이에 대한 관심도가 주변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것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태도는 보여야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제도이며 잘 활용되고 있어요. 가능하면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세부적 규제들이 바뀌거나 늘어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소통을 위한 장치인 것이죠.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하는 편견은 몇몇 제도나 장치들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원 정책에 대한 의존도와 기대가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지원 프로그램이나 인프라가 자신의 꿈을 모두 이루어 주거나 책임져 줄 것이라고 여기는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Q. 젊은 예술가들이 지녀야 할 태도나 지양해야 할 자세가 있다면 조언 바랍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예술을 대하는 것에 있어 공적 가치는 염두에 두되 이것에 매몰되지는 않길 바란다는 것 입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철저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공적 가치로서의 예술과 사적 가치로서의 예술에 충돌이 온다 해도 이것들이 서로 얽혀 사회적 제의 등 나름의 역할들을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술에 있어 공적 가치와 공공의식만이 주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것 같아요. 되도록 자신이 하는 예술에 대해 근본적인 자문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신뢰가 그 중심에 있길 바랍니다.

Q. 끝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미래를 열심히 준비 중인 대학 원보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흔히 ‘스펙’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나만의 스펙’을 쌓으라고 충고해 주고 싶어요. 누가 봐도 멋지고 사회가 동의 하는 스펙이 아닌 자신이 즐거운 스펙을 쌓길 바랍니다. 기성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남들이 하지 않는 자기만족적인 스펙을 쌓아 스스로 이 사회의 가장 주류적인 시스템, 인식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더불어 자본이 어떤 의미인지도 고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만이 이 사회의, 미래 의 유일한 대안인가를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한가지 덧붙이면 국적, 인종, 나이 가리지 않고 연애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에 대한 이해도 필요한 거니까요.

 

대담·정리 : 김내영 │ myjq180@khu.ac.kr/사 진 : 이철주 │ vertigo1985@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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